순신은 그 어머니의 부음을 듣던 날을 이렇게 일기에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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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삼일 맑다 아침을 먹고 어머니를 마중하러 해정을 향하여 떠났다. 가는 길에 홍 찰방 집에 둘러 잠시 이야기하노라니 울 (순신의 아들 - 작자의 말) 애수 (순신의 손자 - 작자의 말)를 보내어 말하대. 아직 배 들어 왔다는 소식이 없다고. 또 들은즉 황천상이 홍백의 집에 왔다 하기로 홍 찰방과 작별하고 홍백의 집에 갔다. 이윽고 종 순화가 배를 타고 와서 배 위에서 어머님의 부음을 고하였다. 뛰어 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고 하늘이 캄캄하여졌다. 곧게 바위로 달려 가니 배가 벌써 닿았다. 아프고 쓰림을 어찌 다 기하랴.)
하고. 이 일기 끝에는「( )(뒤에 적었다)」이라고 잔 글자로 적었다.
그날은 일기할 정황이 없고 후일에 추측하였다는 말이다.
십 사일에는 관을 짓다는 말이 있고. 십 오일에는 입관하였다는 말과. 오 종수(吳從壽)란 사람이 진심으로 호상하였다 하여 분골 나낭이라 하고. 천안 원이 왔단 말과 전 경복(全慶福)이란 사람이 연일하여 진심으로 상복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쓰고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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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육일. 흐리고 비 오다. 배를 끌어 중방개에 옮겨매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본가로 돌아 왔다. 고향을 바라보니 아프고 슬픔을 어찌 다 말하랴. 집에 이르러 빈소하니 비가 퍼붓는다. 남쪽으로 갈 기약이 또 박두하니 우짖고 우짖으며 오직 어서 죽기만 기다릴 뿐이다. 천안원이 돌아 갔다. 추록.) 이렇게 썼다. 앓는 어머니가 돌아 오기만 날을 꼽고 고대하다가 마침내 영구를 모시고 비를 맞으며 옛집으로 돌아 가는 그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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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칠일. 맑다. 금부 서리 이 수영이 공주로부터 와서 길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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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팔일. 비. 종일 비 오다. 마음이 심히 불평하다. 다만 빈소에 곡하고 물러 나왔을 뿐이다. 추록. )
마침내 죄인인순신은 어머니 장례도 못 치르고 금부 관원에게 끌려 길을 떠나지 아니하지 못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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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구일 맑다. 일찍 길을 떠났다. 영연에 곡하였다.)
천지에 어디 나와 같은 일이 있으랴! 일찍 죽음만 못하다. 뇌의 집에 이르러 선묘에 하직하고 길을 떠나 보산원에 이르니 천안 원이 먼저 와서 냇가에 말을 내려 쉬이고 있었다. 임천군수 한 술도 상경하는 길에 앞길로 자나다가 내가 간다는 말을 듣고 들어 와 조상하고 갔다. 아들 회. 면과(조카들) 봉. 해. 분 완과 변주부가 천안까지 따라 오고 원인남도 와 보았다. 작별하고 말에 올라 일신역에 이르러 갔다. 저녁에 비가 뿌렸다.
추록.)
이십일에 공주(公州)에서 조반하고 금부 도사를 만나고. 이십 일일에 은원(恩院)에 다다르니 김 익(金瀷)이란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임 달영(任達英)이란 자가 무곡을 하러 사진포(思津浦)에 왔다는 데 그 형적이 수상하니 조심하라고 충고하였다. 아마 순신을 암살하러 보낸 자객으로 의심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