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3: 3

소서행장의 군사는 정첨사의 회답을 받아 보고는 무엇을 생각함인지 군사를 돌려서 물러갔다. 정발은 적군이 물러 가는 것을 보고 심히 만만하게 여겨서.

제장을 불러서 술을 먹고 즐기고 순사들에게도 술을 주어서 질탕하게 먹었다.

마치 승전이나 한 듯하였다.

그러나 소서행장 군이 물러 간 것은 결코 정발과 그 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서 회보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산성의 방비가 심히 삼엄한 것을 보고 당장 공격하면 이기기가 어려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직 거짓 믿고 물러 가서 조선군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하자는 것이었다.

부산 성내에서는 군사나 백성이나 평일같이 희희낙락하게 그날을 보내고 밤에 각각 자리에 들어 단잠을 잤다. 잠을 자서는 아니 될 첨사 정발과 부하 장졸들까지도 잠을 잤다.

이날은 곧 산과 들에 꽃까지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따뜻하고 생명에 찬 첫여름의 달밤은 극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성뭉을 지키던 장졸들과 성랑으로 돌며 파수를 보던 장졸들도 잠이 들고 달이 서편 하늘에 기울어져 부산(산 이름)의 그림다가 먹과 같이 검게 부산성을 덮고 새벽빛은 아직 비치지 아니한 축시 말 인시 초쯤해서 수만 명 소서의 군사는 선봉장 모리 휘원의 지휘 밑에 열 겸스무 겹으로 부산 해성을 에워쌌다.

대게 일본군의 본진이 유둔하는 곳에서 부산진까지는 오리는 넘고 십리는 좀 못될 만한 가까운 거리이므로. 달이 넘어 가기를 기다려서 대군을 몰아 삽시간에 부산진을 에워 싼 것이다.

초저녁에는 그래도 파수도 보았으나. 닭이 울고 새벽이 가까우매 술 취하고 훈련 없는 군사들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소서군은 부산의 지리를 황하게 잘 아는 왜호(倭戶)를 앞잡이로 성못(성 밖에 파놓은 못)의 얕은 데를 가리고 성내의 수비가 약한 곳을 가리어서. 일변 흙으로 못을 묻어 길을 내이고 일변 비제(飛梯)를 성애 놓고 깊이 잠든 부산성으로 터 놓은 물같이 밀어 들었다.

소서군은 성에 들어오는 대로 집에 불을 놓고 조총을 콩 볶듯 놓아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와 주검이 길을 막았다. 마음 놓고 자던 백성들은 이 불의의 변에 놀라시 혹은 어린 아이를 안고 혹은 늙은 부모를 업고 갈팡질팡 하다가.

혹은총에 맞아 주고 혹은 군사에게 밟혀 죽었다. 조선 군사들도 활을 들어 응전하였으나 벌써 겁을 집어 먹을 뿐더러. 처음 당하는 조총의 위력에 활이 당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먼 거리에서 마주 보고 싸우면 활이 조총(그때 조총은 멀리는 못 갔다)보다 나은 수도 있었으나 단병 접건에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군사는 시가 싸움에 익되 조선 군사는 야전에만 익엇 어느 편으로 보든지 조선이 불리하였다. 길 잘 아는 왜호를 앞세운 일본군은 내 집에 들어가듯이 성내의 요새지를 점령하고 마침내는 첨사 아문을 포휘하고 첨사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사또! 형세가 이 지경이니. 인제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지 아니하오.』

하고 바장(비장) 황운(黃雲)이 칼을 들고 달려 나가려는 첨사 정발의 갑옷 소매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