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에도 악형을 아니 하고 말았다. 윤근수는 비록 한두 번 순신을 고문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형세를 느끼지마는 막상 순신을 대하고 순신의 온후한 태도와 조리정연한 말을 듣고는 악형할 용기가 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둘째번 국문에도 순신의 실토를 받지 못하였다 하여 윤근수를 불신임하는 의론의 실토를 받지 못하였다 하여 윤근수를 불신임하는 의론이 비둥 하였다. 그날 밤에 윤근수의 집에는 순신에게 사정을 두지 말고 반드시 청정에게 매수되어 조명을 거역하였다는 죄상을 자백케 하라는 편지와 방문이 수없었다. 그중에는. 「우리 서인(西人)의 부침에 관한 중대사니 일호 사정 두지 말라」하는 협박장까지 들어 왔다.
이튿날인 셋째번 국문에서 윤근수는 자신을 보전할 필요상 순신을 고문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날의 국문의 중심 문제는.
『네가 적장 청정에게 뇌물을 받고 놓아 주었다지?』
하는 것이었다. 순신은 처음에는 부인하였으나 여러 번 물음을 받을 때부터는.
『나는 할 말을 다하였소.』
하고 이내 벌리지 아니하였다. 윤근수는 금부 관원에게 순신을 고문하기를 명하였다. 나졸들은 순신의 상투를 뽑아 잔뜩 뒤짐에 비끌어 매고 주리를 틀기 시작하였다.
순신의 두 다리의 살은 터져 피가 흘렀다. 정강뼈는 휘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순신의 입은 영원히 닫힌 듯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주리를 틀어도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단근질을 시작하였다. 뻘겋게 달은 인두는 순신의 넓적다리를 부쩍부쩍 지졌다. 기름이 타고 피가 흘렀다.
순신의 전신은 이길 수 없는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조금도 찌그림이 없었다.
『그놈 훈련원에서 말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도 제 손으로 비끌어 매고 다시 말을 타고 그예 과거를 다 보고야 만 놈이다. 독한 놈이다.』
하고 마침내 윤수는 고문을 중지하기를 명하였다. 그러나 형틀에서 끌어 내릴 때 수신은 긴장하였던 신경이 풀어지는 서슬인지 그만 기절하여 버렸다. 그도 오십 삼세의 늙은 몸이요. 임진년 이래로 육 년간 노심 초사에 많이 몸이 쇠약했을 뿐더러. 중한 열병을 치르고 난 지가 얼마 안 되는 까닭에 이 악형에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순신은 그날 밤에 몸에 열이 나고 전신이 아파심히 고통하였다.
이때에 서울에는 순신의 인아친척과 친지와 예전 그 부하로 있던 사람들도 있었지마는 혹시나 순신이 공초 속에 자기 이름이나 나오지 아니 할까 하여 전전 긍긍할 뿐이요. 아무도 감히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오직 전라 좌수사 이억기(李億祺)가 옥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순신을 위문하고 인삼을 두고 달인 미음을 쑤어 들여 순신을 대접하였다. 그도 금부 옥졸 중에 예전 훈련원에서순신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알선으로 그러한 것이었다.
이억기의 사자를 보고 순신은.
『다시는 내왕하지 말라. 혐의를 받으리라. 나 하나를 생각지 말고 영감(이억기를 가리키는 말)의 몸을 생각하여라. 내가 죽으면 영감 밖에 수군을 맡을 사람이 없다. 곧 우수영으로 돌아 가 전쟁 준비를 하여라. 경상도와 전라 좌도 수군이 패하고 일본 함대가 전라 우도 바다를 지날 날이 멀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억기의 사자 편에 순신은 충청 병사 원균(元均)이가 순신의 자리에 충청. 전라. 경상. 삼도 통제사가 되어 명일 발정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윤근수는 왕께 순신이 아무리 고문을 받아도 실토하지 아니한다는 말을 아뢰었다.
왕은 대신과 육조와 삼사의 대관을 불러 순신을 어떻게 처치할까를 물었다.
개왈가참(다 말하기를 순신은 베일 것이요)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