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은 이 순신에게 왕의 분부를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순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첫째로 청정과 행장이 비록 사이가 좋지 못하다 하더라도 적에게 제 나라의 군기의 비밀을 누설할 리가 없고. 둘째로 설사 행장의 말과 같이 그날 그시에 청정의 군사가 온다 하더라도 먼저 그럴듯한 말로 조선의 수군을 유인할 적에는 필시 작은 해로에다가 북병을 많이 베풀거나 무슨 음모를 하였을 것이니 함대를 많이 끌고 간다면 적이 모를 리가 없고. 그렇다고 적게 거느리고 간다면 도리어 적에게 습격을 받을 것이요.
셋째. 일본의 소식을 듣건댄 풍신수길은 해전에 패한 원수를 갚고자 하여 새로 배를 많이 지었다하니. 저는 전 국력을 기울여 오거든 우리는 겨우 삼도의 수군을 가지고 싸울 때에는 지세와 조수의 힘을 빌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어늘.
이제 망망한 대해에서 수많은 함대와 수 적은 함대가 싸운다 하면 백 번 패할 근심이 있을지언정 한번 이길 소망은 없는 것이요.
넷째. 적이 아무리 많은 수군을 거느리고 온다 하더라도 경상. 전라의 바다를 지나지 아니하고는 소용이 없을 것이니 가만히 남해의 요해를 지키고 있다가 적을 맞아 싸울진댄 모든 섬과 바다의 물이 다 이편의 힘이 될 것이요.
다섯째 설사 망망한 대해에서 . 싸워서 적을 이긴다 하더라도 적은 달아나면 고만이나 소득이 없을 뿐더러 만일에 이편이 불리하다 하면 앞에는 적의 함대가 있고 뒤에는 부산. 김해의 적의 소굴이 있으니 그 사이에 끼인 이편은 진퇴 유곡할 것이니대해에 적을 맞아 싸운다는 것은 만만 부당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순신의 말을 듣고 황신은 절절이 옳다고 탄복하였다.
『그러면 어찌하리이까?』
하는 황신의 최후의 질문에 순신은.
『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적병은 하나도 전라도 바다를 넘기지 아니 하리다고 상감께 아뢰시오.』
하였다.
황신이 한산도에서 북명하기 전에 요시라(要時羅)는 김응서를 찾아 벌써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조선 땅에 하륙하였다는 말을 고하고.
『글세 왜 이 순신이 가만히 있었소?』
하고 원망하는 빛을 보인 뒤에.
『들으니까 청정이가 대마도(對馬島 ==조선말로 「두마섬」에서 순신에게 사람과 폐백을 보내었다 하오.』
하였다. 김응서는 요시라의 말을 고대로 대구(大邱)에 있는 도원수 권율(權慄)에게 보하고. 권도원수는 또 그대로 조정에 장계하였다.
황신이가 서울에 들어 온 때에는 벌써 권도원수의 장계가 궁정에 올라「 ) (순신을 죽여라)」이라는 상소가 하루에도 사오 차씩 오르는 때였다.
그중에도 박성(朴惺)이란 사라은. 순신은 적의 뇌물을 받고 나라를 판 놈이니 곧 베라고 격렬한 상소를 하였고. 이러한 틈을 타서 평소에 류 성룡(柳成龍)과 이 순신의 공명을 못마땅이 생각하던 서인들의 다수와 동인들 중에도 북당에 속한 자들은 순신을 죽일 것을 극론하였다.
류 성룡도 말이 없고 오직 이 원익(이원익)만이 이 순신이 결코 그러한 사람이 아님을 역설하고. 그가 체찰사로 지난 해에 한산도에 갔을 때에 본 것을 예로 들어 순신의 충성을 증명하였다. 군률 엄한 것. 순신이 검소하고 사졸과 고락을 같이 하는 것. 인민과 군사가 모두 순신을 부모와 같이 사모하는 것. 청렴 결백하여 진중에 한 계집과 두 벌 옷이 없는 것. 또 소를 잡고 술을 마련하여 체찰사인 자기의 이름으로 군사를 호케한 것등을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