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때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통사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경상 병사 김응서(慶尙兵使金應瑞)를 찾아 보게 하였다.
요시라는 조선말을 잘하는 사라이요. 또 일본군 중에 주화론자인 소서행장의 부하이기 때문에 김응서는 매양 안시하고 그를 만났다.
요시라는 김응서를 보고 지금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대군을 거느리고 정월 칠일에 부산에 올 예정이니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중로에 맞아 싸워 멸하라.
그리하면 두 나라가 다시 싸우지 아니하고 무사하게 될 것이요. 조선으로 말하면 임진년 원수를 갚게 된 것이요. 소서행장으로 말하면 가등청정에게 대한 원수를 갚게 될 것이니 피차에 좋은 일이 아니냐 하였다.
그리고 요시라는 소서행장이 어떻게 가등청정과 원수인 것을 재주있게 말하고 또 어떻게 일본 군사가 싸움을 원치 아니하는 것을 말하였다.
김응서는 이 말을 믿었다. 그리고 대구(大邱)에 유진하고 있는 도원수 권율(都元帥權慄)에게 이 말을 보고하였다. 권율은 다시 이 말을 조정에 장계하였다. 왕은 권율의 장계를 받고 비국제신(備國諸臣)을 불러 물었다.
『참 좋은 기회요.』
하고 그 말대로 하기를 주장한 이는 윤두수(尹斗壽)의 아우 윤근수(尹根壽)였다. 그러나 황신(黃愼)은 윤근수의 말에 반대하였다.
『행장(行長)과 청정(淸正)이 비록 틈이 있다 하오나 비밀한 계교가 적에게서 나왔단 말씀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속에는 필시 괴계가 있는가 하오.』
왕은 영의정 류성룡(柳成龍)을 돌아보며.
『황 신의 말이 옳은 것 같소마는 경의 생각에 어떠하오?』
하고 물었다.
류성룡은 이 말에 대하여 가부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속으로는 황신의 말을 옳게 여겼으나 자기의 말 한 마디가 또 무슨 트집이 될까를 두려워함이었다.
말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때다. 류 성룡은 자기의 지위가 풍전등화인 것을 자각하였다. 그는 심히 마음이 약하여졌다.
왕은 이에 황신으로 위유사(慰諭使)를 삼아 비밀히 순신에게 보내었다.
이때에 이 순신은 가등청정군이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 준비에 분주하였다 관하 각읍주령 . 첨사. 만호. 군관 등에게 대변령(오늘날 말로 대령)을 내리고 한산도에 있는 함대에도 출동 준비를 명하여 오랫동안 잠잠하던 충청.
전라. 경상도의 연해 각지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장졸이든지 일반 백성이든지 하나도 겁내는 이가 없음은 마치 승전을 굳게 믿는 사람들과 같았다.
지나간 육년 간에 이순신의 정치적 수완. 군사적 수완. 인격의 감화를 본 장졸과 인민들은 완전히 이순신과 동심일체를 이루어 그와 사생을 같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늘이 정한 일로 알고 있었고. 또 이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적병은 한 걸음 견 내도를 넘지 못할 것을 확신하였다.
황신이 위유사로 한산도에 이르매 이 순신은 봉명하사라 하며 배에까지 내려와 국궁하고 맞았다. 황신은 이 순신을 처음 보거니와. 오십을 하나 둘 넘을락 말락 그의 풍신과 태도에 자연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더구나 여려 백척 전선에 수만 군졸이 마치 잠이나 든 듯이 정숙하게 자기를 맞는 양을 볼 때에 꿈의 세상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더구나 순신이 거처하는 방이 다른 장졸이나 다름 없이 검소하고 진중에 일개 여자도 없는 것을 보고는 더욱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순신이 왕공과 같이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말은 누가 지어 내었는가. 왕공과 같은 것은 오직 이 순신의 인격뿐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