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21: 22

병신년 십 이월에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는 식은 거행하였으나 다만 책봉뿐이요. 명 나라에서 땅을 비어 주는 것도 없고. 또 통상조차 허하지 아니하고. 그 뿐더러 조선에서는 왕자를 돌려 보낸 사례사도 오지 아니할 뿐더러 이 순신에게 대한 원수를 갚지 못하여 일본군의 위신을 잃었다는 것이 새로 분하게 되어 수길은 가등청정(加藤淸正)에게 병선 만여 척을 주어 정유년 정월에 다시 조선을 침범케 하였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이때에 부산에 있었으나. 명 나라와 화의를 알선하다가 실패한 까닭에 수길의 신용을 잃어 다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등청정이.

첫째 조선 왕자를 치히 일본에 사례사로 오게 할 것.

둘째 조선 수군을 격멸할 것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받아 가지고 조선으로 건너 올 때에 그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순신이었다. 그의 생각에 정면으로 이 순신과 충돌하여 가지고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육년 전에도 백전 백승하던 이순신이어든 지나간 육년 동안에 병선을 세 갑절이나 더 짓고. 군량을 많이 쌓고. 장졸도 날로 조련하여 수로나 길로나 한산도 싸움 적에 비길 배가 아닌데다가 포로 일본 군사를 이용하여 조총 기타 일본 무기를 많이 제조하였을 뿐더러. 경상. 전라. 충청 제도의 요해지에는 거미줄 같이 망대와 파수병과 수비하는 군사를 두어 물 한 방울 부어서 샐틈 없이 방비를 엄밀히 하였다. 또 일본군에서 염탐한 바에 의하면 한산도 기타 요해지에 쌓아 놓은 군량과 소금. 마른 생선 등속은 넉넉히 삼년 동안 이순신의 오만 대군과 연해 백성을 먹일 만하다고 하였다.

『명 나라는 두렵지 않지만 이 순신이 큰 일이다!』

이것이 가등청정 이하 일본 장졸의 입버릇이었다. 이때에 조정에는 류 성룡(柳成龍)의 세력이 떨어지고 서인과 동인풍에 북당이 채를 잡게 될 뿐더러 몇 해 동안 전쟁이 쉬인 틈을 타거 당쟁이 다시 불 일 듯 일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전란 통에 싸우지 못한 설치나 하려는 듯이 밤낮으로 피차에 취모벽자하여 「 」 「 」(죽여라!)이라는 대의 명분론을 주고 받고 하노라고 나라에는 배가 산으로 올라 가는지 바다로 들어 가는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게다가 한산도 싸움의 고마운 맛도 거의 잊어 버려 이순신의 공로를 생각함보다도 일개 무부로서 정이품이라는 벼슬자리가 아니꼽게 생각하는 편이 많게 되었다. 이 기회를 타서 이 순신을 미워하는 현 충청 병사 원균(元均)이 천 가지만 kr지로 이 순신을 무함 중상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요지는 한산도의 싸움이나 당포(唐浦). 당항포(唐項浦)의 싸움은 기실 이순신보다도 원 균 자신의 공이라는 것. 또 부산의 적병의 소굴을 무찌르자고 자기가 강경히 주장하였음에 대하여 이 순신은 항상 겁을 내어 피하기 때문에 대첩을 못하였다는. 이 순신이 조정의 분부를 듣기도 전에 제 마음대로 논공 행상을 하여 사정을 썼다는 것.

통제사가 된 뒤에는 제 마음대로 백성을 섬으로 옮기고 군기를 제조하고 병선을 제조하고 한산도에 궁궐과 같은 집(제승당 ==制勝當)을 지어 왕공고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것. 하향 천민을 심복으로 써서 제 당파를 만들고 경관(서울서 온 벼슬아치)을 무시한다는 것 등등이었다.

「그놈 죽일 놈이다」하는 소리가 서울 장안의 대관집 사랑에서 가끔 들리게 되었다. 그놈이란 물론 이 순신을 가리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