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2: 2

군졸들은 소서행장의 사자를 뒤 떨미를 짚어서. 그야말로 발이 땅에 붙을 새가 없이 성문밖에 몰아 내쳤다. 그러나 한 가지는 판명하였다. 그것은 이 배와 사람들이 해마다 오는 세견선과 상인들이 아니라. 싸우러 온 병선이요. 군사라는 것이었다.

부산진 첨사 정발은 소서행장의 사자를 몰아 내고 곧 군중에 전령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적병을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군사 이천명을 성 위에 벌여 놓아 성 밖으로 모야 드는 적을 활로써 막게 하고. 남은 군사는 갈라서 혹은 성문을 지키게 하고 혹은 병기를 정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말을 놓아 다대포첨사(多大포僉使) 윤홍신(尹洪信).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박홍(朴泓). 경상 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이각(李珏). 동래 대도호부사(東萊大都護府使) 송 상현(宋象賢)에게 일본군이 길을 빌리라 하는 말과 그것을 거절하였다는 말과 자기는 부하를 거느리고 죽기로써 부산성을 지킬 터이니. 만일 부산진의 힘만으로 적군을 막아 내기 어려울 경우에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구원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다대포는 남으로 이십리도 못되고 좌수영은 부산에서 동래부로 가는 중로에 있어서 부산진에서는 . 십오리도 다못되는 곳이요. 거기서 동래부는 십리 남짓하였다. 좌병영은 울산 지경에 있으니. 그것도 부산진에서는 하룻길에 불과하였다.

정발은 설사 칠백여 척의 일본 병선이 사오만의 군사를 싣고 왔다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편 군사로 보면 부산진에 육천이 있고. 좌수영에 일만 이천이 있고. 동래부에 육천이 있고. 좌병영에도 일만여 명이 있고. 게다가 적군이 가지지 못한 성과 지리가 있으며 또 인근에 거진이 많은즉 이삼일 내로 오륙만의 군사를 모으기는 어렵지 아니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방어의 계획을 세우고 첨사 정발이 검은 공단 갑옷에 황금 투구를 쓰고 사랑하는 일검 보국(一劍報國한칼로 나라 은혜를 갚는다)의 칼을 차고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고. 비장. 병장. 군관들도 모두 전복 전립에 우의를 갖추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매고 새로 갈아서 약을 바른 살촉을 박은 화살을 전동에 가득하게 넣어 메고 성 위에 벌인 진중으로 돌아 다니며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병이 몰아 오기만 하면 융전할 준비를 하고 일변 소와 개를 잡아 군사들을 한밥 먹이고 싸워서 이긴 뒤에는 칠백척 배와 뱃속애 있는 물건은 군사들이 맘대로 나누에 가질 것을 약속하였다. 이리하여서 하늘에 닿을 듯한 기운을 가지고 소서행장의 군사가 쳐들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진시가 되자 일대의 일본 군사다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장사 진형을 가지고 부산진을 향하여 달려 왔다. 멀리서 보기에 일만 명은 될 듯하였다. 맨 앞에는 장수 같은 자가 말을 타고 앞섰고 중간쯤해서는 붉은 비단 갑옷을 입고 금빛이 번쩍거리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쓴 대장이 여러 장수의 옹위를 받고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이 붉은 갑옷을 입은 장수는 제일군의 대장인 소서행장이요, 진의 맨 앞에 선 장수는 선봉장 모리 휘원(毛利輝元)이었다.

소서행장의 군대는 부산 해성에서 활 두어 바탕될 만한 곳에 와서는 진형을 학익진(鶴翼陣)으로 변하여 부산성을 에워 살 모양을 보이고는 잠간 진을 머무른 뒤에 어떤 장수 하나가 단기로 부산성 남문을 향하고 달려 와서 편지 하나를 전하였다. 그것은 아가 편지와 마찬가로 길을 빌려 달라는 것이요. 만일 빌리지 아니하면 십만대군으로써 부산성을 무찌르겠다는 최후 통첩이었다.

『그놈을 죽여라!』

하고 비장들이 분개하였으나 정발은.

『단기로 온 사자를 죽이는 것이 의가 아니다.』

하여 만류하고 왜어 통사를 시켜.

『길을 빌리는 것은 일개 병장이 할 일이 아니니. 우리나라 왕께 여쭈어라.』

는 회답을 전하고 또.

군사를 물려 서울서 『 회답하기를 기다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사정 없이 멸하리라.』

는 위협하는 말을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