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8: 19

심유경이 일본으로 간 후에 수삭이 되어도 소식이 없으므로 심히 초조하던 책봉정사 이 종성(이종성)은 병신 사월 어느 날 무서운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명국 복건(福建) 사람으로 왜구에게 포로가 되어 오래 일본에 있다가 도망하여 온다는 두 사람의 말이었다. 그 말은 이러하다 -.

풍신수길은 결코 명나라의 책봉을 받지 아니하리라. 이 종성이 만일 바다를 건너 가서 일본 땅을 밟는 날이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먼저 건너간 심유경도 지금 감금을 당하고 있어서 벌써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종성은 결코 일본을 가지 말아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심유경이가 이 종성을 미워하여(이종성이 개국 공신 李文忠의 자손으로 문벌이 심히 높기 때문에 매양 심유경을 일개 부랑자. 협잡군이라고 조인 광좌에 꾸짖은 까닭이었다) 그를 일본에 건너 오지 못하게 하려는 꾀였었다.

이 꾀를 모르는 이 종성은 그날 밤으로 군도 모양으로 변복하고 급한 시부름을 가노라 하여 파수 보는 일본 군사를 속이고 사관에서 빠져 나와 밤새도록 남원(南原)을 향하고 도망하노란 것이 새벽이 되어 보니 울산(蔚山)의 일본성이었다. 그는 황겁하여 산으로 들어 가 사흘 동안을 밥을 굶어 거의 죽게 된 것을 조선 사람에게 발견도어 서울로 올라와 북경으로 달아나 버렸다.

아침에 책봉 정사 이 종성이 달아난 것이 발각되자 일본 사졸들은 가슴을 치고 울었다 그는 그들은 소서.. 행장이 일본을 다녀 와서 책봉사를 데리고 가는 날이면 자기네도 조선 땅에서 철퇴하여 하루라도 바삐 그리운 고국에 처자를 만나리라 하고 그것만 고대하다가 이제 책봉사가 달아나고 보니 전쟁이 끝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낙심한 까닭이었다.

부사 양 방형(楊方亨)은 늦잠을 자다가 이 종성이 달아났다는 말을 듣고 곧 이 종성의 사관에 달려 가 방을 수색하였다. 책봉사의 인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곧 그 인을 들고 소란하는 일본 강졸들을 향하여. 여기 책봉사의 인이 있고 또 부사인 내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효유하였다. 그리고 남아 있는 명나라 관리와 군사를 불러 놓고 달아난 이종성이 명나라의 이름을 더럽히는 놈이라고 타마하였다. 양 방형의 말에 일본 군사들은 진정하였다.

이 종성이 달아난 후 며칠이 아니 되어서 소서행장이 일본으로부터 돌아 왔다. 명 나라에서는 이 종성이 도망하였다는 보고를 듣고 부사 양 방형으로 정사를 삼고 심유경으로 부사를 삼아 일본으로 가게 하였다. 그때에 심유경은 조선 조정에 대하여 일본에 통호사를 보낼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원래 화의를 원치 않음으로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마침내 부득이 사신을 보내게 되어 심유경의 접반관이던 황신(黃愼)을 정사로 명나라 책봉사와 동행케 하였다.

병신년 이월 이일. 대판(大阪)에서 풍신수길 일본 왕 책봉식(豊臣秀吉日本王冊封式)이 거행되었다. 이보다 먼저 풍신수길은 복견성(伏見城)에 굉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조영하여 명 나라 책봉사를 거기서 맞아서 위엄을 자랑하려 하였으나 불의에 대지진이 일어나 모처럼 지은 궁궐이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풍신수길은 지진에 무너져도 겁나지 아니할 만한.

헛가게 모양으로 짐을 짓고 책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이날 명나라 책봉정사 양 방형(楊方亨)이 앞에서고 부사 심유경(沈惟敬)이 금인(금으로 새긴 인)을 들고 뒤를 따르고. 풍신수길 측으로는 덕천가강(德川家康). 가등청정(加藤淸正). 소서행장(小西行長) 등 각 제후가 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