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7: 18

성혼은 조정이 모두 정엄을 베라는 것을 보고 왕께 아뢰었다 -.

정 엄은 본래 충신 『 대절이 있는 사람이니 이 사람을 깊이 허물할 바를 아닌가 하오. 복절사의(伏節死義)할 마음이 없고야 이러한 말을 낼 수가 있소?』

하고 정 엄을 변호하려 하였다. 그러나 왕은 크게 노하여 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수와 화친을 말하는 자는 죽으이 마땅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류 성룡은 감히 말을 내지 못하고 물러나왔다. 이로부터 삼사(三司)가 다투어 주화론 배척을 주장하였다. 유영경(柳永慶)이 그 두목이었다.

성룡은 뒤에 영경을 보고.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주장하니. 싸울 힘이 있소?』하고 물었다.

영경은 대답할 말이 없이 무안하였으나.

『대감은 주화오국(主和誤國)이라고 하시던 말을 잊었소?』

하고 반문하였다.

성혼이 물러난 뒤에 왕은「 ( ....) (한번 죽기는 차마 할지언정 화친을 구한단 말을 듣기를 원치 아니 하노라. 어쩌나 사특한 말을 들려 의를 깨뜨리고 삼군의 마음을 혹하고).」하는 글을 지어 조당(朝堂)에 방을 붙이게 하고 인해 전교를 내리되.「간사한 놈이 사특한 말이 이에 이를 법이 있는가. 무릇 호정의 처지와 변장의 소위. 기다 혼의 사특한 말에 그르침이 됨이로다」하였다. 이리하여 성룡과 혹은 곧 사직하고 대죄하기를 청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조선 조정에서는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싸우고 있는 동안에 그런 것은 알은체할 것도 없이 명나라와 풍신수길과의 새에는 화의가 진척되었다.

처음에는 명나라 책봉정사가 부산의 일본 진중에 오기 전에는 철병할 수 없다고 소서행장이 주장하기 때문에 남원에서 개구리 잡아먹기로 일을 삼던 이 종성(李宗誠)은 을미년 시월에 마침내 부산으로 내려 가 소서행장의 진중에 들었다.

그러나 소서행장은 관백 풍신수길의 명이 없이는 촐병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고 하여 이 종성을 만나지도 아니하고. 먼저 가서 책봉사를 맞을 준비를 하고 또 책봉을 받을 예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하여 병신년 정월에 소서행장은 심유경과 같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심유경은 이번에 자기가 일본에 가서 수길을 만나기만 하면 만사는 다 해결만 하면 만사는 다 해결된다고 장담하고. 문관의 옷을 입고 의기 양양하게 배에 올랐다. 배에는「 」 넉 자를 쓴 큰 기를 달았다. 이것은 자기의 혀의 힘으로 족히 두 나라의 싸움을 말리겠다는 뜻이다.

심유경은 풍신수길에게 망룡의 (망룡의)와 옥대(玉帶)와 익선관(翼善冠)과 대명 지도와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자기 개인의 이름으로 풍신수길에게 드려 그 환심을 사고. 또 석성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보물과 금. 은을 풍신수길의 부하 여러 요인에게 뇌물을 보내어. 책봉정부 사보다도 자기가 중요 인물인 것을 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리 마망의. 일본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재미있게 향락 생활을 시작하였다.

심유경이 일본에 건너가 이렇게 풍신수길이하 요인들의 환심을 사며 향락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부산에 남아 있는 책 봉정사 이종성은 겁이 더럭 났다.

그것은 책봉준비하러 간다던 심유경과 소서행장에게서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망연할뿐더러 자기만 부산에 내려오면 철퇴한다던 일본 군대는 조금도 물러가는 빛을 보이지 아니한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