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4: 15

이러하건마는 명병 만은 배고픈 줄을 모르고 날마다 술과 고기에 묻혀 지내었다 조선 백성들은 . 산에 올라 풀잎사귀. 풀뿌리. 송기. 느릅나무 껍질과 뿌리를 벗겨 먹어 산이 빨갛게 동탁하였다.

명 나라 군사가 술이 취하여 길바닥에 토하여 놓은 것을 백성들이 다투어 헕아 먹고 힘이 약하여서 못 얻어먹은 이는 곁에 서서 울었다.

큰 소 한 마리에 쌀 서 말. 세목 필에 조두 되. 길에 나와 노는 어린 아리를 잡아다가 삶아 먹고. 심하면 산 채 다 뜯어 먹어서 아이를 혼자 내어 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크게 병이 돌아 날마다 죽는 사람을 미처 파묻을 수가 없어서 시구문 밖까지 끌어다가 내어 버린 송장이 산더미같이 쌓여서 수십 길 높이가 되었는데. 어떤 평안도 중 오륙인이 와서 구덩이를 여러 개를 파고 한 구덩이에 수백 명씩 묻고 재를 올렸다.

뭇 백성들의 부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위 사대부집 부녀들도. 혹은 일본 군사들에게 겁탈을 당하여 낳은 자식이 뉘 자식인지를 알 수 없어서. 화단을 면한 집들에서는 화단을 당한 집과 혼인을 아니 하려 하였다. 만일 이러다가는 대다라는 대가에서는 자녀를 혼인할 길이 없으리라 하여. 왕은 종실과 귀척으로 하여금 먼저 난 만난 집 자녀들과 혼인하게 하였다.

부녀들 주에는 겁탈을 아니 당하려 하여 반항하다가 죽은 이. 미리 죽은 이.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은 이. 부모의 뒤를 따라 죽은 이도 많았다.

장홍(張鴻)이란 자는 자기의 처가 적에게 반항하여 정절을 잃지 않고 죽었다고 왕께 상소하여 열녀로 정문까지 내렸으나 후에 황신(黃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일본군에게 포로되었던 조선 부녀의 명부를 가져 오매 그 속에 장홍의 이름도 든 것을 보고 모두 장홍을 비웃었다.

난리가 처음 날 때에 어떤 사람이 점을 쳐서 송(訟)이라는 패를 얻었는데 「.....) (주검이 삼스러진 듯하도 피는 흘로 공이를 띄우리라. 사람들이 제 어미는 알아도 아비는 알지 못하리라. 그런 뒤에야 싸움이 끝나리라)」한 것이 맞았다고 하였다.

아무 준비도 없이 밤낮 당파 싸움만 하다가 갑자기 싸움이 터지니 나라에 경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벼슬 팔기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쌀 백 섬에 삼품. 삼십 섬에 오품. 이모양으로 값도 상당하였으나. 전쟁이 일년이 넘어서부터 쌀 열 섬. 스무 섬에 통정대부. 가선 대부를 준다 하여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판에 있어서 오직 이 순신이 계사년 칠월에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톤베가(忠淸. 全羅. 慶尙. 三道水軍統制使)가 되어 한산도(閑山島)에 본영을 두고 삼도 연해 각고을 각섬에 유리하는 백성들을 모아 혹은 농사를 시키고. 혹은 소금을 굽게 하고. 혹은 고기를 잡게 하고. 혹은 짐승을 치게 하고. 또 혹은 대를 심어 화살을 만들게 하고 혹은 . 항왜로 하여금 조종. 기타 일본식 무기를 만들게 하고. 혹은 병선을 새로 짓고 낡은 것을 수리하게 하여. 조선 천지를 등에 짊어진 듯한 힘을 썼다. 전라도 경상도의 모든 섬과 연해 각 고을에는 오직 난리의 근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의식의 걱정이 없이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럴 뿐더러 왕이하로 서울 조정에서 공담과 공론으로 쓸데없는 싸움을 하고 앉았는 무리들의 입에 칠하는 풀도 이 통제로부터 혹 강으로 실어 올려 보내는 쌀로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