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3: 14

계사년 시월 초사일에 왕이 서울로 돌아 왔다. 그러나 이때에도 일본군이 전혀 철퇴한 것은 아니요. 울산(울산) 부산(부산). 김해(김해) 등지에 유진하고 있어서 명 나라에 대하여 외교적을 서로 절충하고 있었다. 경상 남도 각지에 유정(劉艇) 등이 거느린 명균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전혀 싸울 뜻이 없고.

오직 민간의 양식을 먹고 부녀를 겁탈하고 행패를 할 뿐이었다. 전라도 곡식을 날라다가 명병을 먹이느라고 전라. 경상. 양도 백성은 부역에 죽을 지경이었다.

왕은 일년 반 만에 서울에 돌아 왔으나. 경복궁. 창덕궁도 다 불타 버리고 종묘도 빈터가 되고 민가도 진고개 기타 남촌에 일본군이 유진하던 테를 제하고 쑥밭이 되어 버려서. 전능골( )월산 대군(월산대군) 살던 집을 임시로 대궐로 삼고 거처하였다. 이때에 어떤 명 나라 장수가 대궐을 지으라고 진언하였으나 왕은.

『깊은 원수를 못 갚았거든 어찌 집을 지으랴.』

하고 짓지 아니하였다.

그리다가 이 정도 행궁은 적군이 있던 부정한 곳이니 차마 오래 거처할 수 없다 하여 경복궁 서쪽 모퉁이에 초가를 짓고 대궐을 삼았다.

쑥밭이 된 서울 북촌의 도처에는 잡초와 가시 덩굴이 황무하여 도적과 짐승이 횡행하고 인왕산과 북악산에는 . 대낮에도 호랑이와 이리 무리가 들끓었다.

왕이 돌아 왔다는 말을 듣고 백성들이 사방으로부터 서울에 모여 들었으나 먹을 것이 없어 길가와 풀밭에 굶어죽는 사람이 날마다 수 없었다. 시월이 지나고 차차 날이 추워지매 굶고 얼어 죽는 사람은 날마다 늘었다. 미처 내다가 묻을 수가 없어 이 골목 저 골목에 쓰러진 시체를 굶주린 개와 고양이들이 서로 싸우며 뜯어 먹었다. 혹은 굶은 어미가 등에 업혔던 어린 자식을 삶아 머고.

혹은 새로 죽은 시체를 뜯어 먹고. 살아 먹고는 중독이 되어 죽는 이도 있었다.

왕은 이러한 교지를 내렸다. 「. (요새 주린 백성을 건질 길이 없으니. 내 하늘을 우러러 슬피 탄식하고 먼저 죽으려 하나 그도 못하노라.)」그리고 왕은 매일 자실 양식으로 백미 육승을 받던 것을.

『내 어찌 차마 세끼를 먹으랴. 서 되쌀도 다 못 먹으려든 여섯 되를 무엇에 쓰랴.』

하여 여섯 되중에서 서 되를 덜어 굶는 백성을 주라 하였다.

서울 안에는 다섯 곳에 진제장(賑濟長)을 벌이고 죽을 쑤어 먹을 것 없는 백성을 구제하였으나. 도저히 다 먹여 낼수가 없었다. 대과에 급제한 사람들도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손에 홍패를 들고 진제장에 나가서 죽을 얻어먹었다.

일본군이 서울에 있을 때에는 혹은 딸을 팔고 혹은 젊은 아내를 팔아서라도 연명할 도리가 있었지마는. 인제는 딸과 아내를 팔려 하여도 살 사람이 없었다.

밥 한 그릇에 과년한 딸을 팔고. 옷 한 벌에 아내를 팔아 버리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부모가 죽어도 거상도 입지 아니하고 도무지 처자니 형제니 하는 생각도 다 없어지고 말았다. 얼마 후에 왕은 초가집을 떠나 정동 계림군(桂林君)집으로 대궐을 삼고. 심의겸 (沈義謙) 집으로 동궁을 삼고. 심연원(沈連源) 집으로 종묘를 삼고. 정동 근방에 있는게 들러 막고 그것을 시어소(時 御所)라고 이름 지었다.

이 순신은 그동안에 축적하였던 쌀과 소금과 고기를 경성으로 실어 보내어 왕 이하로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을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