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2: 13

행주(행주)의 대승전은 조선인에게 또 한번 새 용기를 주었다. 방어사 고 언백(高焉伯). 이 시언(李時言). 조방장 정희현(鄭希玄). 박 명현(朴名賢) 등은 유병이 되어 계념이 영을 막고 의방장 박 유인(朴惟仁). 윤 선정(尹先正). 이 산휘(李山輝) 등은 창릉(昌陵). 경릉.(敬陵) 간에 숨어 적진을 엄습하여 적이 많이 나오면 피하고 적게 나오면 잡아 이 모양으로 적에게 많은 손해를 주었다.

그뿐러더 이 때문에 적병이 촌려로 다니며 구량. 계견. 마초를 구하지 못하여 크기 곤란하였다.

이 여송(李如松)은 명군을 거느리고 평양으로 향하는 길에 평산(平山) 땅에서 권율(권율)의 행주 대첩의 보를 듣고 부끄러워 평양으로 가기를 중지하고 다시 개성으로 회군하고 싶었으나. 그럴수도 없어 평양으로 갔다.

그러나 임진 사월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함으로부터 만이 개년이 되매. 군대가 지나간 연로의 백성들은 이태 동안이나 농사를 못 짓고 바람에 불리는 풀잎과 같이 유랑하는 도안에 거의 다 굶어 죽어 버리고 말았다.

제찰사 류 성룡(柳成龍)이 동파에 있다는 말을 듣고 죽다 남은 굶주린 백성들이 늙은이와 어린이들을 데리고 동파로 모여 들었다. 그 백성들은 얼굴은 누렇게 부어 오르고 말도 잘하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길에서 거꾸러져 죽었다.

그중에도 참혹한 것은 어떤 젖먹이 달린 여자 하나가 기진하여 길에 넘어져 죽은 것을 젖먹이는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시체의 곁으로 기어 들어 가며 젖에 매달려 빨며 젖이 아니 나온다고 우는 것이었다. 류성룡은 이 광경을 보고 울었다.

이에 류 성룡은 강에 들어 온 전라도 피곡 천석을 풀어 전 군수 남궁제(南宮悌)로 하여금 감진관(監賑官)을 삼아 주린 백성을 구제하게 하였다.

곡식은 꽤 많이 들어 와 있으나. 이 여송의 대군이 볼일에 다시 올 터이니.

그것을 다 기민 구제에 쓸 수는 없었으므로 쌀을랑 군량으로 두고 피고만을 기민을 구제하라 함이었다.

남 궁제는 백성더러 솔잎을 따오라 하여 솔잎가루를 만들어 그것 한 되에 쌀가루 한 홉을 섞어 물에 타서 먹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하고도 많은 피난민을 다 먹일 수는 없어 그것도 없어. 먹는 사람이 백에 하나도 다 되지 못하였다.

하루는 밤에 크게 비가 내려 한데서 밤을 새우는 굶은 백성들이 울고 신음하는 소리가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 동안에 죽어 쓰러진 사람이 얼만지 이루 셀 수가 없었다.

이 여송(李如松)은 다시 심유경(沈惟敬)을 서울로 보내어 경성의 일본군과 화의를 진행하였다. 이 화의에 관한 것은 조선 조정에는 일체로 알리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류 성룡이하로 조선 대관들은 화의를 배척하는 까닭이었다.

마침내 화의가 성립되어 사월 십 구일에 일본군은 경성에서 철퇴하고 사월 이십 일에 명균이 경성에 들어 왔다.

경성을 철퇴한 일본군은 아무도 따르지도 아니하고 막지도 아니하는 길을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작년 진주 목사(晋州牧使) 김 시민(金時敏)에게 진주성에서 패한 설분을 한다 하여 유월에 대군으로 진주성을 포위하여 유월 이십 팔일에 진주성을 깨뜨렸다.

이 싸움에 조선 측으로 군사와 백성 육만 명이 죽고 진주목사 서예원(徐禮元).

판관(判官) 성수경(成守璟).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경상 병사 최경회(崔慶會). 충청 병사 황진(黃進). 의병 복수장(義兵復讐將) 고종후(高從厚) 등이 죽었다. 김천일과 최경회는 촉석루(矗石樓)에 있다가 통곡하고 남강(南江)에 빠져서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