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은 승장 처영(處英)으로 하여금 승병 이천을 거느리고 산성 서쪽을 지키게 하고. 기타 부하 장졸로 하여금 각기 부서를 따라 지키게 하고. 행주의 부인. 처녀 아동들로 하여금 혹은 돌을 나르고 혹은 군사에게 물을 나르고 혹은 물을 끓이게 하였다.
이윽고 적군의 선봉 백여 기가 나타나고 그 뒤에 대군이 좌우익으로 나뉘어 밀어 오는 것이 보였다. 산성에 올라 망보던 군사의 말이 오리 밖에 적군이 수없이 달려 오는 것이 보인다고 하였다.
적군은 붉은 기와 흰 기를 수없이 날리고 또 군사들마다 등에 붉은 기와 흰 기를 꽂고. 장수인 듯한 자는 황금산을 받고 얼굴에는 귀면을 쓰고 어떤 장수는 짐승의 탈을 쓰고. 별별 긱 괴괴한 모양을 한 장졸이 악악 소리를 치며 달려와서 경각에 행주 산성을 삼면을 에워쌌다.
권율은 군사에게 영을 내리어 적군이 책 밑에 가까이올 때까지는 꼼짝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행주 근방에서 모인 민병들은 이 기괴한 대군이 오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달아나려 하였으나. 삼면으로 적군이 에워 싸고 일면은 대 강인 것을 볼 때에 그들은 달아날 수 없을 줄을 알고 죽기로써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적군은 삼면으로 점점 산성 밑으로 바싹바싹 대들었다. 권율은 그제야 칼을 빼어 들고 몸소 군사들을 호령하여 싸우기를 명하였다. 목책과 구덩이 소게 숨은 전라도 정병들의 살이 푸르륵 소리를 내며 일제히 날으기 시작하였다. 이편은 높은 곳에서 몸을 숨기고 쏘는 것이요. 저편은 낮은 벌판에서 몸을 드러내어 놓고 싸우는 터이라. 이편의 살은 백발백중으로 저편 군사를 맞히지마는 저편에서 쏘는 살과 총알은 목책과 떨어질 뿐이었다.
적의 제일군은 순식간에 거의 전멸이 되고. 이윽고 제이군이 대어 들었다.
이편에서는 활을 쏘고 총을 놓고. 돌을 굴리고 모래를 뿌리고. 저편 역시 죽을 힘을 다하여 싸웠다.
이러하는 동안에 적의 제이. 제삼. 제사. 제오. 제육. 제칠. 제팔의 군이 삼슬 듯하여 넘어지니 해는 벌써 석양이 되고 산성. 앞 벌판에는 피가 냇물같이 흐르고 주검이 더미더미로 쌓였다. 이편 군사도 반이나 죽었다. 군사들은 피곤하고 살도 다하였다. 돌을 나르는 부녀들의 치맛자락도 다 떨어졌다.
아이들의 손과 발에서는 피가 흘렀다. 마침 충청도 수군 절도사정 걸(정걸)이 살과 군량을 싣고 행주 산성 밑에 들어 와 닿았다. 이것은 피곤한 군사들에게 백배의 용기를 주었다.
그중에도 가장 참혹하게 싸운 것은 산성 서쪽을 지키는 승병이었다. 적군은 산성을 치려면 서쪽을 깨뜨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처영이 승병을 거느리고 지키는 서쪽을 향하여 아홉 번이나 돌격을 하였다. 그러나 처영과 부하인 승병들은 오직 한번 뒤로 물러갔을 뿐이요. 끝끝내 버티었다. 그들은 천명 중에 구백여 명을 잃어도 물러가지 아니하여 마침내 적으로 하여금 단념하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다.
적은 최후의 돌격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시석을 무릅쓰고 홰를 가지고 돌격하여 산성 목책에 불을 놓을 계획을 썼다. 이편에서는. 물을 가지고 적병이 놓은 불을 껐다. 해는 거의 넘어 가서 한강의 굽이치는 물에는 낙조가 피밫과 같이 비추었다.
불로 치려던 계획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일본군은 수없는 시체를 버리고 총퇴각을 개시하였다.
권율은 퇵각하는 적군을 추격하는 모양만 보이고는 적군이 황혼 소겡 아니 보이게 된 때에 쇠를 울려 싸움을 거두고 적장의 머리 일백 십 개와 왼편 귀 두 개를 베고 나머지 시체는 여러 더미로 모아 쌓고 불을 사라라 버렸다. 이 싸움에 군기를 얻은 것이 칠백 이십 칠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