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1: 1

임진 사월 십 이일 진시에 일본의 함대는 대마도의 대포(大浦)를 떠나서 신시 말에 부산진 앞바다에 다다랐다. 병선 칠백여 척이었다. 이 칠백여 척의 대함대가 구름과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한 보고가 곧 전라 좌수영에서 수사 이순신이 사월 십 오일에 받은 첫 경보이었다. 이렇게 칠백척이나 되는 대함대가 국경에 침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계책이 없던 조선 관헌들은 실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그 이튿날인 사월 십 심일 미명에 일본 함대는 아무 저항도 받음이 없이.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진을 향하고 개미때와 같이 진군하였다. 이날에 부산진을 지키는 주장인 첨절제사(僉節制使) 정 발(鄭撥)은 절영도(絶影島)에 사냥을 나가서 자고 아침에야 비로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다는 경보를 듣고 타고 갔던 병선 세 척을 끌고 창황하게 부산진으로 돌아 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일 같이 있었다. 군사들이나 백성들이나 조금도 놀라지 아니하고 성 위에 올라 가서. 일본군이 이상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소총을 메고 개미떼와 같이 몰려 들어오는 것을 구경삼아 보고 있었다. 이것은 조정이 심 성일의 말을 믿어서 일본이 싸우러 오리라는 말을 일체 입 밖에 내기를 금지하여. 백성들이 전혀 난리가 난 줄을 모를는 까닭이었다. 해마다 한번씩 일본 배들이 장사하러 오는 예가 있으니. 이것도 아마 그것인가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도 많고 사람도 많고 차림차림도 현란하구나 할 뿐이었다.

『사또. 암만 해도 저 일본 사람들이 군사인가 보오. 평수 길이 싸우러 온다더니 과연엔가 보오.』

하고. 부하가 의심스럽게 말하나 결의 사람들은 나라에서 금하는 말(싸움이 난다는 말)을 한다고 눈을 끔적거리고 첨사 정 발은 작취가 미성한 낯에 웃음을 띠우며.

『일본이 아무리 강성 하기로니 무명 지사를 일으켜 가지고 천벌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또 설사 일본이 감히 싸움을 돋운다 하기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내 이 칼 하나면. 만 명이 오기로 무슨 걱정이냐.』

하고 칼을 만지며 뽐내었다 . . 정발은 칼쓰기를 자랑하고 또 호협한 남아다.그 말이야 시원하다. 또 정 발의 자신에는 노상 이유가 없지도 아니하였다. 부산 해성(釜山海城)에는 육천명 군사가 있었고 성의 주위에는 깊은 못이 있고 바닷가에서 성에 이르는 동안에는 마병이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철질려를 깔았다. 이만한 병력과 설비가 있으면 왠만한 적병은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첨사 정발은 이러한 모든 것을 믿고 배짱 편안하게 동헌에 앉아서 지난 밤 부족한 잠을 졸고 있었다.

이때에 일본 장수 소서행장(小西行長)에게서 부산 첨사에게 사자가 왔다. 그 사자는 공손히 첨사에게 예하여 소서의 편지를 첨사에세 드렸다. 그 편지에는 보통 편지 모양으로 환훤의 인사가 있고 그 끝에 이번에 평수길이 대군을 발하여 명 나라를 치려 하니. 일본 군사레게 길을 빌려 무사히 명나라로 들어 가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정발을 그 편지를 보고 비웃는 듯이 껄껄 웃고 내어 던지며.

『네 저놈을 성 밖에 몰아 내쳐라!』

하고 호령하였다. 정 발의 생각에 그 편지는 괘씸한 것 보다도 엉큼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