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07: 8

그러나 이 여송은 곧 일어나 흙 묻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다시 말에 올라 앞서 달렸다.

이윽고 박석 고개가 바라보이는 곳이 이르매 고개 위에 일본병 수백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명병이 오는 것을 보는 일본병은 마치 달아나는 듯이 박석 고개에서 스러지고 말았다.

이 여송은 말에서 떨어진 것이 심히 불쾌하였다. 그 불쾌한 생각이 여송의 용기를 병적으로 돋구어 적의 형세를 염탐해 보지도 아니하고 군사를 좌우익으로 나누어 박석고개로 올려 몰았다.

여송의 천여 기가 거의 박석고개 마루터기에 당도하였을 때에 고개 너머로부터 만여 명 일본군이 긴 칼을 번뜩이며 고함을 치고 돌진하였다 불의에 대군을 마난 명병은 무서운 생각이 났으나 칼과 칼이 맞부딪칠 지경이 되었으니 어찌할 수 없었다.

여송의 군사는 북병(북방군사)이 되어서 총기가 없고 가진 것이 오직 단검 뿐이었고 그 단검이란 것도 날이 무디어 도무지 힘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군이 가진 칼은 길이가 삼사척이나 되고 날이 예리하여 한점 두르면 족히 삼사인의 허리를 벨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잛고 무딘 칼을 든 명병은 날카롭고 긴 칼을 든 일본병의 손에 마치 풀잎사귀와 같이 스러졌다.

이 여송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음을 보고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죽다 남은 명병도 대오를 잃고 칼을 버리고 장을 거꾸로 끌고 달아났다.

파주에 패해 돌아온 이 여송은 패했단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아니하고 심히 풀이 죽었다. 밤에는 밥도 잘 먹지 아니하고 오늘 박석 고개 싸움에 죽은 장정과 사랑하던 자를 위하여 통곡하였다.

이튿날이여송은 동파(東波)로 퇴군한다고 주장하였다. 여태껏 이 여송의 감정을 상할까 하여 잠잠코 있던 류성룡은 우의정 유홍(兪泓)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순변사 이 빈(이빈) 등을 데리고 여송을 찾았다.

이때에 여송의 장외에 나서고 제장이 좌우에 서서 퇴군하라는 영을 듣고 있었다. 류 성룡은 이 여송의 앞에 나아가.

『승부는 병가상사라. 다시 형세를 보아서 싸우는 것이 옳거든. 어찌 가벼이 동하려 하시오?』

하고 퇴군에 반대하는 뜻을 표하였다. 여송은 성룡의 말이 어제 박석 고개 싸움에 진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고 성을 내며.

『지기는 누가 졌어? 어제도 우리 군사가 적병을 많이 죽여서 싸움에 이기지 아니하였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더구나 퇴군할 까닭이 없지 아니하오! 이제 퇴군하면 적이 만심을 내어 천명(명나라 군사를 하늘 구사라고 존칭하는 뜻)을 능멸하지 아니하오!』

하고 성룡은 다투었다.

『져서 퇴군하는 것이 아니야. 누가 졌다고 해? 이곳이 비가 와서 땅이 질어서 대군을 머물기에 합당치 아니하니까. 동파에 돌아가서 잠깐 군사를 쉬어서 다시 싸운다는 말이야!』

하였다. 그러나 이 여송은 속이 굴한 것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뽐내어도 말에 속심이 없었다.

류성룡은 등은 여러 말로 퇴군이 불가함을 역설하였으나 명장 측에서는 여송에게 퇴군하지 아니치 못할 것을 반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