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05: 6

그러나 이때에 벌써 명 나라 대군은 숙천(肅川)에 다다랐다. 해가 저물어 대군이 바야흐로 밤을 짓고 숙소를 정하려 할 때에 순안에서 평 호관을 죽이고 그가 거느린 병정 세 사람이 평양으로 도망하였다는 보고가 왔다. 이보고를 들으매 제독 이여송(李如松)은 일각을 주저 할 수 없다 하여 활을 당기어 줄을 올리었다 이것은 진군하라는 . 뜻이다. 그리고 이여송은 말에 올라 종자 수기를 데리고 순안(順安)으로 달려 가고막하 제영에도 뒤를 이어 숙천을 떠나 밤새도록 행군하여 이튿날 이른 아침에 평양성을 에워싸고 보통문과 칠성문을 쳤다. 이것이 계사년 정월 초육일이었다.

삼 일간격전이 있는 후에 초팔일에 마침내 소서행 장군은 평양성을 버리고 얼음 위로 대동강을 건너 달아났다. 사흘 동안 싸움에 평양성 내외에는 시체가 없는 곳이 없고 군사들의 발에 밟힌 눈 위에는 세 나라 군사의 붉은 피로 수를 놓았다. 화전과 대포에 평양 성중의 민가는 반 넘어 타버리고 칠성문도 대포를 맞아 무너졌다.

류성룡은 미리 황해도 방어사(黃海道防禦使)이 시언(李時言). 김경로(金敬老)에게 밀령하여 평양에서 패하여 달아나는 적병을 전멸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언과 경로는 싸우기를 두려워 피하고 황해도 순찰사(黃海道巡察使) 유영경(柳永慶)도 해주에 있어서 동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자기가동하지 아니할 뿐더러 도리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사 김경로를 해주로 불러 들였다.

이리하여 평양성을 떠난 소서행장. 평 의지(平義智)현소(玄蘇). 평 조신(平調信) 등은 패잔병을 거느리고 아픈 다리를 끌며 서울로 향하였다. 그들은 촌려에 들어가 배를 가리키고 입을 가리켜 밥을 빌어 먹으나 조선 사람중에는 그들을 해하려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류 성룡의 명령을 받은 방어사 이 시언(李時言)이 멀찍이 일본군의 뒤를 따라 오면서 주리고 병들어 길가에 넘어진 군사 육십여 명의 목을 매었을 뿐이었다.

명군이 평양을 회복하였으나 차일 피일하고 진군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이번 평양성 싸움에 일본군의 무서움을 맛본 까닭이었다. 평양에 입성한 뒤에 명군이 조선군사와 인민에게 대한 폭행은 여간이 아니었다. 말이 통치 못하여 조름만 제 뜻대로 아니 되면 곧 칼등으로 조선 군사를 때리고. 조선 군사가 얻은 수급이나 노획품이나다 빼앗아서 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수한 것은 모두 조선군의 책임으로 돌렸다.

평양이 호복되매 왕은 종신을 데리고 평양으로 왔다. 왕은 제독 이 여송(이영송)을 만나 평양을 회복한 수고를 사례하고 속히 행군하여 서울을 회복하기를 청하였다.

『군량이 있어야 아니 가오.』

하고 이 여송은 책 말하는 듯한 눈으로 왕을 보았다. 왕은 어색하여 시신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이 처지에 오만 명 대군의 군량을 댈 생각을 내는 이는 없었다. 평양성의 군량은 일본군이 다 먹어 버리고 남은 것은 이번 싸움에 다 불타 버렸고 대동강 저편인 . 황해도에도 난리를 겪고난 나머지에 인적이 끊였으니 군량이 있을 리가 없었다.

왕은 하릴없이 류 성룡(柳成龍)에게 군량 판비할 것을 명하였다. 류 성룡은 왕명을 받아 곧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넜다.

성룡은 백설이 날리는 추운 밤에 종사관과 종자 수인을 데리고 밤중에 중화(中和)를 지나 새벽에 황주(黃州)에 다다랐다. 밤새도록 말을 달린 것이었다.

지나오는 길에는 촌락이 비고 닭. 개 짐승의 소리도 들을 수가 없으며 어디나 촌가에 불 하나 반짝거리는 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