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00: 1

한산도와 부산 싸움이 있는 후로 각지에는 의병이 일어났다. 이것은 이 수닌의 용기가 패잔한 조선 백성에게 새로운 힘을 넣어 줌이었다.

의병뿐 아니라 관리 중에도 새로운 용기를 얻어 싸우는 이가 생겼다. 예를 들면. 김제 군수(金堤郡守) 정 담해(鄭潭海). 해남 현감(海南縣監) 변 응정(邊應井) 같은 사람이다.

이때에 적군은 이 순신에게 대패하여 도저히 수로로 전라도네 들어 가지 못할 줄을 알았다. 그러나 전라도는 그가 심히 원하는 바였다. 첫째로. 전라도는 물사닝 풍부한 곳이니 많은 군사가 오래 조선에 주둔하려면 조선의 보고인 전라도를 손에 넣어야 할 것은 군략상으로 가장 필요하였다. 둘째로. 조선 칠 도를 다 손에 넣고도 이 순신 한 사람 때문에 전라도에 손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 적군의 우신에 관계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셋째로. 가장 무섭고 가장 미운 원수인 이 순신의 접촉할 곳을 없이 하기 위하여서도 전라도를 손에 넣는 것은 필요하였다.

이라하여서 적군은 한산도 패전 이래로 육로로 전라도를 공략하는 것으로 중심 문제를 삼았다. 서울로부터 내려 오는 적병들이 언필성 전라도라고 한 것이 이때문이었다. 이에 적군은 경성 이북에 갔던 군사들을 도로 불러서 전라도 공격에 전력을 다한 것이었다.

임진년 칠월 그믐께 적병은 경상 우도(慶尙右道)의 초계(草溪)로부터 안음(安陰). 장수(長水)를 지나 전주(全州)를 치려 하였다.

이때에 김제 군수 정 담해와 해남 현감 변 응정은 감사 이광(李光)에게 일이 급한 것을 말하였으나 이 광은 용인(龍仁)에서 패전한 쓴 경험이 있어 겁을 내어 전주성중을 지킨다 하고 나로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정 담해와 변 응정은 분개하여 수하병 천여 명을 끌고 곰재(곰재)에 목책을 만들고 산길가로 끊어 적군을 막기로 하였다.

과연 수만의 적군이 곰재로 올려 밀었다. 담해와 응정은 용감하게 선두에 서서 군자를 지휘하여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싸웠다. 저편에는 이편보다 수십 갑절되는 군사가 있으나 이편은 높은 곳에 목책을 세우고 숨어서 싸우기 때문에 이편에서 죽은 군사보다 여러 갑절되는 군사를 죽였다.

그러나 종일 싸움에 이편 군사도 거의 다 죽어 이백명 가량 밖에 남지 아니한 때에 적군은 뒤로 물러가는 듯하더니 밤에 샛길로 사방으로 올라 와서 담해의 군사를 완전히 포위하고 항복을 청하였다.

댐해는 단연히 항복을 거절하고 싸움을 계속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칼을 선두에 서서 싸우다가 적의 철환에 맞아 죽었다.

담해가 죽으매 응정이 대신 남은 군사를 호령하여 싸웠으나 그 역시 적의 철환에 맞아 주고 군사들도 담해와 응정의 의게에 감복하여 하나도 아니 남고 다 싸워 죽었다. 곰재에는 시체가 길을 막아 사람이 통행할 수가 없었다.

적장은 군사를 시켜 이편 장졸의 시체를 모아 큰 무덤 여럿을 만들고 그 위에 목패를 깎아.

『( )』

이라고 써 세웠다.

이튿날 적병은 대거하여 전주성 외에 다다랐다. 적병이 오는 것을 보고 전주 관리들이 달아나려 하나 감사 이광은 선화당에 수어 나가지 못하였다. 이때에 태주 사람 전전적(前典籍) 이 정란(李廷鸞)이 문관복을 입고 성에 들어 가 달아나려는 관리와 백성들을 보고.

『우리가 다 죽을지언정 전주성을 적군에게 내어 주지 못하리라.』

하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