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선 사백척!』
하고. 수사는 과거에 생각하였던 것이 맞은 것을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이날 밤 이경에 또 경상 우수사 원균의 관이 왔다.
『부산진(釜山鎭)은 함락되고 첨절제사 정 발(鄭撥)은 전사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십팔일에 또 경상 우수사 원균의 관이 왔다. 그날 일기에 이순신은 이렇게 썼다.
『...........
.』라 하고. 이것을 번역하면 이러하다.
『오후 세 시에 경상 우수사의 관이 왔다. 동래도 함몰이 되었는데 양산 군수와 울산 군수도 조방장으로 동래에 와 있다가 같이 패하였다 하니. 그 분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병사와 수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동래 뒤까지 왔다가 곧 회군하였다 하니 더욱 가통하다.』
하는 것이다. 하루를 걸러 이십일에 경상 감사 김수로부터 관이 왔다.
『양산(梁山)도 함락이 되었다. 적의 구세가 강성하여 도무지 대적할 자가 없어 승승 장구하여 무인지경 같이 들어오니 전함을 정리하여 와서 구원하라.』
하는 것이었다. 이 기별을 받고 이 수사는 칼을 들어서안을 치고 통분함을 마지 아니 하였다. 더구나 병사니 수사니 하는 무리들이 군사를 끌고 동래 뒤까지 갔다가 적세가 치성한데 겁을 집어 먹고 달아난 것이며. 적이 부산에 상륙한 지 사오일이 못되어 동래. 양산. 김해 같은 거진이 물에 소금 슬 듯 무너진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순신은 가슴이 터짐을 금치 못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곧 군사를 끌고 경상도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조정의 명령이 없이 자의로 움직임은 국법이 허하지 아니 하는 것이므로 순신은 곧.
『경상도를 가서 구원케 하소서.』
하는 장계를 썼다. 그 속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적세가 이처럼 치성하여 큰 진(鎭)들이 연하여 함몰되고 내지까지 범하게 되오니 이런 원통함이 또 있사오리까. 분함으로 간담이 찢어지는 듯하오와 말할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국민된 자 누구나 맘과 힘을 다하여 국가의 수치를 씻기를 원치 아니하는 자 없사오니. 엎디어가 함께 싸우라시는 천지신명의 명을 기다리오며 소속한 주사는 물론이옵고 각 관포(官脯)에도 병선을 정리하여 주장의 명을 기다리라는 일로 본도 각 감병사에게 통의 하였나이다.』
하고 곧 행하지 아니하면 기회를 잃어버릴 것을 말하였으니. 이것은 조정에 있는 대관들이 당파 기타의 관계로 천연세월할 것을 근심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수사는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珖). 방어사(防禦使) 곽영(郭瑛).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 최원(崔遠) 등이며 경상도순변사(巡邊使) 이일(李逸).
관찰사(觀察使) 김수(金脺). 경상 우수사 원균 등에게도 내으 수로 형세며.
양도 주사가 어디서 모일 것이며. 적의 병선이 얼마나 많으며. 시방 있는 곳이 어디며. 기타 책응할 모든 일을 급급히 회답하라는 뜻으로 말을 보내어 이문한 것들을 자세히 아뢰이고. 전라 좌수사의 소속인 방답(防踏). 사도(師徒).
여도(呂島). 발포(鉢浦). 녹도(록島). 오진이며 순천(順天). 광양(光陽). 낙안(樂安).
흥양(興陽). 보성(寶城) 오 읍에 명령하여 본월 이십 구일을 기약하고 본영 앞바다로 모이라고 약속하였다는 말을 적었다.
이장계를 보내고 수사는 더욱 출전 준비에 힘을 쓰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서울에서 회보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