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의 여관에서 돌아오는 창수는 전신이 허정거리고 걸음 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 듯아였다. 거리를 비추는 전등들 은 한경의 눈곱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빛인 듯도 하고, 라 디오에서 보내는 연예 방송은 한경의 재채기 소리 같기도 하였다. 창수는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편지 왔어요."
하고 여관 하녀가 들이는 경순의 편지를 받았다. 창수는 동경에 온 뒤에 본집의 편지를 받기는 처음이요, 게다가 사 랑하는 아내의 편지이니만큼 얼마나 반갑고 기쁠는지 모를 것인데, 어쩐지 그다지 반가운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창수 는 그 편지의 봉투 글씨가 경순의 손으로 쓴 것이 아니오 창옥이 대신 써 준 것을 볼 때에,
"아무리 여자라도 편지 피봉 하나를 쓸 줄 몰라서야."
하는 생각으로 우선 불쾌하였다.
"이 속에 있는 사연이 무슨 그리 재미있는 말이 있을꼬."
하고 계속하여 생각할 때에 별로 속히 떼어 보고 싶은 흥 미가 없었다. 창수는 손에 들었던 편지를 손가락으로 퉁겨 서 방바닥에 던지고, 두 무릎을 세운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서 천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마지못하는 듯이 편지를 떼어 보았다. 창수는 편지를 읽을 때에 자기 집 안부라든지 다른 사연이 있을까를 보려고 하느니보다, 먼저 사연 만든 것의 잘 되고 못 된 것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연은 창수가 짐작하던 바와 같이 구식스럽고 평범하였다. 편지라는 것은 꽃을 그리려다가 잎새의 시늉도 내지 못한 것처럼 의미는 있는 듯하나 도무지 말이 오밀조밀하고 앙그러지지를 못하 여서 사랑의 편지로는 아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고추장 과 배추김치를 보낸다는 말에는 반가왔다. 창수는 술을 좋 아하는 사람으로 식성이 맵고 얼근한 것을 좋아하는 터인 데, 동경에 와서는 값싼 학생 하숙에서 심심한 토장국과 건 건찝찔한 무김치 쪽에 비위가 상하여서, 고춧가루를 따로 사 놓고 간장이나 다른 반찬에 쳐서 먹는 중으로, 집에서 매콤하고 검들하게 먹던 생각이 끼니마다 나는 터이라, 고 추장과 배추김치를 보낸다는 편지만 보고도 침이 삼켜지며 반가왔다. 창수는 다시금, 경순은 학문을 배우지 못한 여자 로 편지 사연을 재미있게 쓸 수가 없는 형편이요, 일자 무 식의 구식 여자로는 편지를 그만큼 쓰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돌이켜지면서, 편지를 그만큼이라도 쓴 경순에게 동 정하였다.
? 그러나 한경이 같은 여자가 이런 편지를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아마 우선 편지 사연이 이보다 몇 배나 길 것이다.
가령 길지는 아니하고 이보다 짧더라도, 아까 한경이 짤막 한 것처럼, 짧은 사연에서도 얼마나 재미있는 말을 썼을까.
글자 글자가 구슬 같은 것으로 구절구절이 보는 사람의 마 음을 기쁘게 하겠지. 기쁘다 못하여 감격한 눈물을 흘리게 되겠지. 사랑이라는 것은 키스를 한다든지 껴안는다든지 하 는 육체적 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맞고 서로 이해가 깊고 말 한 마디를 한다든지, 이런 때에 편지 한 장 을 한 대도 그럴 듯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어서, 정신상으로 기쁨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고상한 사랑이요, 그렇지 못하 고 사랑이 육체에만 그치는 것은 저급(低級)한 사랑일 것이다.' 하고 생각하던 창수는 홀연히 생각을 돌이킨 듯이, ?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마다 그런 행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든지 그런 행복을 믿으려고 힘을 써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未完)
<朝鮮中央日報 一九三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