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9: 3

성재는 발길을 들어 함사과의 복장(服裝)을 차 주고 싶었 다. 그러나, 꿀떡 참고 소리를 가다듬어,

"제 집을 가차압하시니 그런 법이 있읍니까."

"나는 몰라, 나는 모르네. 모든 채권은 다 변호사에게 위임 하였으니까."

"그러면 제 집을 가차압하도록 한 것이 영감은 아니십니다 그려."

"응, 채권은 다 변호사에 위임하였으니까...... 그러나 나도 자네 어른과의 친분을 생각하고 잔 세간을랑 빼어 놓으라고 그랬네."

"좀 연기하여 주실 수 없겠읍니까?"

"나는 몰라, 변호사가 알지. 이변호사가 알어."

"좀 연기하도록 영감께서......"

"모른다는데 그러네, 몰라, 몰라."

하고 고개를 돌리며 시끄러워하는 양으로 보인다.

여러 객들 중에는 이 회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혹 성재에 게 동정하는 이도 있지마는 모르는 체하고 아무말도 아니 한다. 성재는 암만 말해도 쓸 데 없을 줄을 알고 좌중(座中) 에 일례(一禮)한 후에 뛰어 나왔다.

성재가 나온 뒤에도 함사과의 얼굴에는 불평한 빛이 사라 지기 아니하여, 기생들에게 소리하라는 말도 아니한다. 객들 도 모두 다 깨어져서 다른 데만 바라보고 가끔 함사과의 얼 굴을 도적하여 본다. 이 좋은 판에 성재 때문에 흥이 식을 것을 밉게 여기는 빛도 보이고 종일 잘 놀려던 것이 주인의 불평으로 중도에 그치지 아니할까 하고 근심하는 빛도 보인 다. 기생들도 웃기를 그만두고 공연히 장구며 가야금을 어 루만지며 서로 머리와 웃소매를 만지기도 한다. 그 중에 뚱 뚱한 기생 하나이,

"얘, 그게 누구냐?"

하고 곁에 앉은 키 작고 이빨이 좀 뻐드러진 기생에게 묻 는다.

"그게, 저, 김참서 아들이야. 그런데 무엇을 하느라고 그러 는지, 종일 방안에 들어앉아서 무슨 유리통을 불에다 쬐익 있어. 나도 심심하면 몰래 가서 참틈으로 디밀어 보지."

"유리통은 불에 쬐어서 무엇하누?"

"내가 아니? 꼭 손가락같이 생긴 것이더라. 그것을 이렇게 불에다대고는 우두커니 앉았겠지. 저 간호부 복장 같은 흰 복장을 입고서 내 무엇을 하는지 당초에 알 수가 없더라."

이것은 성재의 집 바로 곁에 사는 수향(水香)이라는 기생인 데, 어떻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객들도 차차 수향에 게로 고래를 돌려 성재의 말을 듣는다. 종일 유리통을 불에 다 쬐고 앉았더라는 말과, 무엇을 하는지 모르겟다는 말은 아마 좌중의 성재의 사업에 대한 비평을 대표한 것이겠다.

함사과를 천복지인이라고 칭찬하던 노인이 수향더러,

"그래, 날마다 그러구 앉았어?"

"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고 모양으로 앉았어요. 내가 요 렇게 창에 붙어 보는 것이, 혹 그의 눈에 띄든지 하더라도 슬쩍 볼 뿐이지 당초에 무슨 말이 없지. 내 이상한 사람 다 보지."

"너 어디 그 양반을 한번 놀려 먹어 보렴!"

하고 그 노인이 웃는다.

"아이구, 놀려 먹는 것이 무엇이야요. 돌부천데요. 돌부처 야요."

하고 깔깔 웃는다.

"네가 좀 수단을 부려 보았니?"

"호...... 아니야요. 그런 것은 아니 하지마는......"

"그러면 어떻게 돌부천지 아니?"

"보니까 그렇단 말이지요. 밤낮 우두커니 앉았기만 하니까 요, 돌부처가 아니고 무엇이야요."

하고 또 호호 하고 웃는다.

부슬부슬 떨어지던 가을비가 개고 구름으로 추워 보이는 일광이 한성 은행 벽돌벽을 스쳐서 함사과 집 사랑 대청에 들이쓰인다. 이윽고 장구 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나고, 기생 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며 간간히 '좋다' '좋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매우 불평하던 주인의 안색에도 화기가 돌고 그것을 따라 객들도 즐겁게 놀기를 시작한다. 기생들도 흥을 내어 좋아 소리를 연발하며 가끔 남녀성이 합한 웃음소리가 대문으로 나온다. 문 밖에는 이웃 행랑 사람들이 우두커니 서서 새어 나오는 풍류를 얻어듣고 섰다. 그것이 마치 강아지나 고양 이가 주인의 밥상 밑에 앉아서 뼈다귀 던지기를 바라는 양 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