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는 '어디로 가셔요?'하는 성순의 말도 들은 체 만체 실 험복을 벗어 버리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아가 천변으로 한참 올라가다가 좌편 골목으로 서너 집을 지나가서 어떤 솟을대 문 앞에 우뚝 선다.
행랑은 낡은 건축인데 다문만 새로운 것을 보니 본래 평대 문 집이던 것을 솟을대문으로 고친 것이 분명하다. 자기 문 패에는 해자(楷字)로 '함명은'이라고 쓰고 그 곁에는 그보다 좁은 작은 문패에 함 영민(咸永敏)이라고 썻다. 영민은 성재 와 함게 잠간 동경에 유학하던 사람이나, 명치 대학 법과 일년급에 삼 년이나 있다가 중도에 돌아온 후로는 성재와 아직가지 상봉한적이 없다.
대문 밖에는 인력거 세 대가 놓였고 안으로 여러 사람의 지껄이는 소리가 들린다. 성재는 함사과의 생일이 이때이던 것을 기억하였다. 전일 같으면 자기의 부친되는 김참서(金參 書)는 으레히 제일로 초대를 받을 손님이언마는 금년에는 자기의 천(賤)한 채무자라 하여 초대도 아니한 모양이다. 성 재는 잠간 주저하다가,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 높이 불렀다. 누가 들어도 그 소리에 분기(忿氣) 가 섞인 줄을 알겠다. 마당에 들어서니 사랑 대청에는 배반 (盃盤)이 낭자하고 수십 명의 중로가 취안이 몽롱하여 이리 저리 쓰러졌으며 구석구석 둘씩 셋씩 기생들이 떼를 지어 모여 앉아서 남남(??)히 지껄인다. 객들은 서로 듣지도 않는 소리를 크게 지껄이며 뚱뚱한 함사과는 화려한 연석에 기대 어 가장 만족한 듯이 객들의 지껄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지껄이는 말은 대게는 함사과에 관한 말이요, 함사과에 관 한 말이면 반드시 함사과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함사과가 젊어서 빈한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귀하게 된 것 은 함사과의 수완이 비범함이라고 칭찬하는 자도 있고, 아 니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함사과는 천복지인(天福之人)이라 부자만 될뿐더러 체력이 장(壯)하고 자녀가 많다 하여 천복 설에 찬성하는 자도 있고, 함사과는 나이 육십에 가까이 돼 도 아직도 첩 이삼인을 능히 거느릴뿐더러 간간 기생 오입 도 할 수 있으니, 과연 천복지인이라 하여 무한히 찬송하는 수척한 노인도 있고, 아니라 모두 다 그 부여조(父與祖)가 적선 적덕 (積善積德)한 인과라고 단언하는 자도 있다.
객들이 하는 말을 종합하건대, 함사과는 적선 적덕 한 부 조의 자손으로서 자수로 능히 가도를 융성케 하여 많은 자 녀를 두고 육십이 되도록 밤마다 젊은 첩을 거느릴 수 있으 니 천복지인이로다 함이 그 결론이였다.
성재는 연전 자기의 생신에도 여기 모인 이 객들이 와서 여기서 지껄이는 이 소리를 지껄이던 것을 생각하였따. 그 때 그네들은 자기를 보고 자기의 부친을 향하여 '성재는 참 기특한 사람이지, 함사과의 아들은 돈만 쓴다는데 이 사람 은 공부를 어떻게 잘 하는지 일본서도 제일등 가는 사람이 라는데, 참 김참서는 천복지인이요'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마다엥 들어와도 모두 다 못본 체하 고 올라오라는 사람조차 없다. 성재는 성큼성큼 당에 올라 함사과에게 인사를 하였다.
사과는 잠간 몸을 들며,
"응, 자네 어째 왔나?"
"좀,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읍니다."
"응, 무슨 말, 후에 오게. 오늘은 손님이 많으니 말들을 새 없네."
하고 일동을 향하여,
"자, 이제는 기생 소리나 들읍시다. 얘 기생들아, 이리 나 와 소리나 하여라. 이 동백(李東伯)이 아직도 아니 왔느냐?"
"응, 기생들아! 소리나 하여라."
하고 객들이 응한다. 객들은 대개 함사과의 젊었을 적 친 구이므로 아직도 빈궁한 자가 많다.
그에는 함사과와 김참서의 생일을 자기에의 큰 명절로 알 다가 지금 와서는 김참서는 윤락하고 오직 함사고가 남았을 뿐이다. 기생들은, 혹은 장구(長驅)를 들고, 혹은 가야금을 들고 한데 모여 앉는다. 장구 둥둥하는 소리, 가야금 줄 고 르는 소리가 나자 객들의 눈은 기생에게로 몰린다. 성재의 존재는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성재는,
"급히 여쭐 말씀이 있으니 잠깐만......"
"응 자네 아직도 거기 섰네그려. 저편 소년들 모인데 가서 놀게."
"놀 새가 없읍니다."
"그러면 가게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