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75: 5

성재가 들어온다. 그 뒤에 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민이다. 민의 얼굴은 푸르게 되었다. 민은 아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성순이가 아니 왔더라는 말을 듣고 도로 성재의 집을 향하여 오다가 중간에서 성재를 만나서,

"마침 잘 만났소. 급한 일이 있으니 속히 내 집으로 갑시 다."

하는 성재의 말에 깜짝 놀라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줄을 몰랐었다. 성순이가 이불을 가슴까지나 덮고 정신없이 누운 것과 모친이 성순의 곁에 울며 쓰러진 것과 어멈이 눈에 붉 게 된 것을 볼 때에 민은 쓰러진 것과 어멈이 눈이 붉게 된 것을 볼 때에 민은 전신의 피가 일시에 동결함을 깨달았다.

실내의 공기는 연(鉛)과 같이 무거워서 그 속에 있는 사람 들의 가슴으로 천근의 무게로 내려 누르는 듯하고 천정에는 벌써 ㅈ구음의 그늘이 서리어 있는 듯하였다. 방한복판에 달린 양등(洋燈) 불의 춤을 추는 불길도 무서운 조짐으로 사 람을 협박하는 것 같아서 민은 소름이 쭉 끼침을 깨달았다.

성재는 성순의 곁에 구부리고 앉아서 손으로 성순의 턱을 흔들면서,

"성순아, 민군이 오셨다."

하는 그 소리를 떨렸다.

성순은 전기를 맞은 듯이 몸을 떨며 눈을 방싯 뜬다. 그리 고 그 기운 없는 눈으로 민을 찾는다. 민은 곧 뛰어 들어가 성순을 껴안고 싶었으나 성재의 말을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섰다. 성재는 성순에게 아직도 정신이 있는 것을 다행히 여 기면서 일어나 민에게 자기의 앉았던 자리를 사양하고 자기 는 민의 등 뒤에 선다. 민의 앉으며 성순의 눈을 보았다. 말 없이 이윽히 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일시에 눈물이 솟아올 랐다.

민은 성재를 돌아보면서 그제야,

"무슨 약을 먹었어요?"

하고 물었다.

아까 길에서는 아무 말도 물어보지 못하였고, 하고 성재도 성순의 눈을 보고 운다.

"유산!"

하고 민이 다시 성순의 얼굴을 보며,

"왜 유산을 잡수셨읍니까, 왜 그런 생각을 내셨읍니까?"

그러나, 성순은 말이 없고 전신에 한번 경련이 일어나며 눈을 감는다. 성재는 그것을 보고 민의 앞으로 뛰어나오면 서,

"민군! 성순을 안아 줍시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얼마 가 안 남았어요!"

하고 '성순아'를 연호(連呼)한다.

모친도 새로 울기를 시작하고는 성순의 가슴에 매어 달린 다.

민은 팔을 성순의 목으로 돌려 가만히 그를 일으켜 자기의 가슴에 안았다. 성재는 성순의 수족을 만져 보고 이미 거기 는 맥이 끊어졌음을 고하였다.

웃방에서 혼자 울던 성훈의 부인도 뛰어 내려와 성순의 다 리를 만진다. 각 사람은 구태어 가려는 성순의 영혼을 잠시 라도 오래 머물게 할 양으로 울음 소리로 외쳐 부른다.

성순의 가슴에 마주 잡힌 민의 두 손은 벌벌 떨린다. 성순 의 머리는 민의 왼편 어깨에 기대어지고 민의 헤쓱한 뺨은 성순의 찬땀이 흐르는 이마에 올려 놓았다.

성재는 죽은 빛이 된 성순의 손을 쳐들어 보면서.

"성순아, 잠간만 정신을 차려라."

하고 손에서 팔까지 올려 주물렀으나 대답이 없으매 또,

"성순아, 잠간만......"

할 때에 성순은 눈을 떴다.

"민군이 오신 줄 아느냐?"

성순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민군이 어디 계씬지 아니?"

성순은 가만히 눈을 들어 민을 보다가 민의 눈물이 자기의 이마에 떨어질 때에 다시 눈을 감는다.

성재는,

"성순아, 용서하여라. 너는...... 너는......"

하다가 곁에 울며 쓰러진 모친의 등을 흔들면서,

"어머니, 어머니, 이 애 생전에 어머니 입으로 제뜻대로 하 여 준다 해 주십시오."

모친은 겨우 고개를 들어,

"성순아, 네 뜻대로 하여 주마. 네 뜻대로 하여 줄 것이니 살아만 다오."

하고 도로 쓰러진다.

성재는 성순의 손과 민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민군! 용서하시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불러 주시오."

하고 성순을 흔들며.

"성순아, 정신을 차리느냐? 잠간만 정신을 차려라! 성순아!"

성순은 또 한번 눈을 뜨며,

"네."

하고 분명치 못한 음성으로,

"자, 민군, 이제! 이제! 아내라고 불러 줍시오."

민은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성순을 보며,

"성순씨! 저는 영원히 성순씨를 가장 사랑하는 아내라고 부 릅니다."

성순의 눈에서는 새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