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순에게는 이제 모친보다도 성재보다도 민이 가장 가깝 다. 자기가 죽더라도 모친은 슬퍼할 뿐이요 성재는 세상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뿐이지마는, 불쌍한 생각과 아까운 생각 도 있겠지마는, 자기의 반신이 죽은 듯이 슬퍼하고 낙망할 자는 민이다. 진실로 성순은 이미 사회의 모든 관계에서 떠 나서 오직 민과만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인류를 볼 때에도 민을 통하여, 우주를 볼 때에도 민을 통하여, 사생을 볼 대 에도 민을 통하여 본다. '웬 셈인지 이제는 당신과 저와의 분간할 수가 없어요' 한 성순의 서한 중 일절은 그의 진정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면 성순은 자기를 죽임은 믿을, 죽더라 도 민의 일부분을 죽임인 줄을 알 것이다. 자기가 죽은 뒤 에 민이 얼마나 슬퍼하고 낙담할 것을 알 것이다.
성순의 눈앞에 근심하는 듯한 민의 얼굴이 떠오를 때에 성 순은 손에 약병을 감추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리고 혼잣말 로, (용서하십시오. 당신을 의롭게 찬 세상에 두고 나만 편안한 나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 죄인 줄 아옵니다. 그러나 모친 의 슬퍼하심과 오빠의 책망하심은 제가 견디기에는 너무 무 거웁니다. 앞날에 우리의 전도에 다닥뜨릴 비난과 공격은 제가 견디기에는 너무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용서하십시오.
저는 찬 세상에 당신을 혼자 두고 먼저 달아납니다.
이것이 물론 슬픈 일이올시다. 부모를 버리고 형제와 나라 와 꽃같은 청춘을 버리고, 다른 모든 것 보다는 사랑을 버 리고 가는 것이.
아아 사랑! 그 사랑을 어ㄸ?ㅎ게 버리고 가리까. 사랑이란 그렇게 버려지기 쉬운 것이오리까? 내 육신의 생명이 끊어 지면 곧 내 가슴에 불길이 타던 사랑도 식어 가는 육체와 같이 식어 버리고 쓰러지는 조직과 같이 쓰러질 것이오니 까. 그럴 수가 있겠읍니까.
만일 그렇다 하면 이 생명이 스러지는 것보다 이 사랑이 스러짐이 아픕니다.
내 육체가 죽으면 온전한 사랑만이 뛰어나서 당신의 품속 에 들어갈 것이 아니겠읍니까. 아무 저항도 아무 방해도 받 지 아니하고. 만일 그렇게 된다 하면 차라리 이 육체를 죽 이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니겠읍니까.
...... 아아! 그러나 사후의 일을 누가 아나, 누가 아나. 만일 이 몸과 같이 사랑도 스러진다면 그것이 무서운 사실이 아 닙니까...... 하느님! 어떤 것이 참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왜 그렇게 말씀도 아니하시고, 물끄러미 보기만 하십니까?
왜 나를 안아 주시도 아니 하시고 키스도 아니하십니까. 왜 그렇게 수십 보의 거리를 두고 나를 싸고 빙빙 돌기만 하십 니까?
그저 죽어라! 하십시오. 제가 이 약을 먹는 것을 무서워함 은 아니올시다마는, 이 찬 세상에 당신을 혼자 두고 어떻게 가겠읍니까.
아아, 이것이 당신을 위해서 죽는 것이라 하면 얼마나 기 쁘겠읍니까. 저는 제 슬픔이 무서워서 죽으려 함을 당신께 대하여 미안해 하옵니다. 아아, 이것이 당신을 위해서 죽는 것이면, 가령, 당신이 병이 중활때에 내 생명을 드려서 당신 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ㅈ구는 것이라 하면 얼마나 기쁘겠 읍니까.
그러나, 제가 산다고 해도 당신께 비방과 고통을 드릴 뿐 이겠지요. 세상은 당신을 핍박할 수 있는 대로 핍박하겠지 요? 당신이 평온할 수 있는 인생을 도리어 저를 위하여 불 행한 일생이 되겠지요. 제가 사랑하여 드리는 데서 받으시 는 기쁨이 족히 그 불행과 상쇄하고 남음이 있겠읍니까. 어 떻게 어떻게. 제 사랑이 무엇이기로, 저 같은 것의 사랑이 무슨 힘이 있고 무슨 가치가 있겠기로, 저 같은 것의 사랑 이 무슨 힘이 있고 무슨 가치가 있겠기로. 아아, 위대한 당 신에게 조그마한 제 사랑이 무엇이겠읍니까. 제가 제 몸과 마음을 다 마친들 그것이 무엇이겠읍니까.
그래요. 그래요! 제가 살아 있음이 제게도 불행이요, 당신 께도 불행이외다.
아아, 당신은 왜 저를 물끄러미 보시기만 하십니까. 죽어 라! 해 주십시오. 죽어라! 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죽어도 불행은 아니지요. 저는 행복하지요. 저는 살아 보았고 사랑해 보았읍니다. 이제 더 산다 하더라도 다 만 그것을 연장해 갈 뿐이겠지요. 네, 저는 사회에 대하여 다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직책이 있읍니다. 그것을 피하는 것은 죄겠지요. 그나, 어찌합니까.
아아, 여러분! 저라는 생명이 이 세상에 아니 왔던 줄로 단 념해 주십시오! 그리고 죄가 있거든 책망 해 주시되 불쌍하 거든 동정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