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는 실망하였다. 성순이가 어디로 갔을까. 만일 민한테 로 아니 왔다 하면 정말 어디 죽으러나 아니 갔을까. 경찰 서에 가서 보호 청원을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할까 하고 벽돌로 지은 종로 경찰서를 얼른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말없이 섰는 민의 근심도 결코 성재에게지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참고,
"그런데 성순씨가 어디로 가셨어요?"
하고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을 물었다. 성재는,
"집에 큰 비극이 일어났소.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신 다고 그 러시고, 성순은 어디로 달아나고...... 정말 여기 아니 왔소?"
민은 좀 성을 내며,
"아니 왔어요."
하였다.
성재는 무슨 말을 할듯할듯하다가 인사도 없이 인력거를 타고 어두운 묘동 골목으로 내려간다. 민은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기대어 앉았다. 가만히 성재의 집에 일어났던 풍파 를 상상하고 성순이가 혼자서 어디로 도망하는 양을 상상하 였다. 성순이가 헐덕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양도 보 이고, 또 어디서 자살을 하여서 경관과 군중 사이에 피묻은 성순의 죽음이 누워 잇는 양도 보이며, 사복 순자가 자기의 방에 난입하여 자기를 힐문하는 양도 보이고, 자기가 무수 한 군중 속에 섞여서 무정한 타매(唾罵)를 받는 양도 보인 다. 그리고는 자기와 성순이가 한정 없이 멀리로 달아나 양 과, 어떤 산중이나 섬(島) 중에서 둔세(遁世)의 적막한 생활 을 보내는 양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성순의 생명은 지금 풍전에 등화니, 성순이가 비록 아무리 의지가 견고하다 하더라도 일시의 비관과 수치 에 어떠한 일을 저지를는지도 모르는 것이니, 이 경우에 있 어서 진실로 책임을 가지고 그를 구원할 자는 민 자기밖에 없다. 민은 벌떡 일어났다. 당장 뛰어나가서 성순의 뒤를 따 르리라. 그러나 성순이가 어디로 갔는지 방향도 알 수 없으 니 어찌하랴. 혹 자기에게로 올는지 모르며, 만일 왔다가 자 기가 없는 것을 보면 그 때야말로 성순을 갈 바를 모를 것 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민은 도로 책상에 기대어 앉아서 가 만히 귀를 기울이고 대문에 누가 들어오는 것만 기다렸다.
십 분이나 기다렸다. 벌써 아홉 시 사십 분! 열 시 민은 검은 소프트모를 꾹 눌러 쓰로 목도리를 눌러 쓰고 목도리로 코까지를 싸두르고 대문 밖에로 나서서,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전차 선로를 향하여 나갔다. 전차도 이 제는 드물게 다니고 전주에 달린 등불만 반짝반짝하며 그리 세지 아니한 북풍에 전선이 붕붕 소리를 낼 뿐이다. 민은 동(東) 탈까 서(西) 탈까 잠간 주저하다가 종로를 향하고 보 도로 올라갔다. 민의 머리는 혼란하여 무수한 생각이 있는 듯하면서도 그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 골목의 컴컴한 그 늘에는 성순이가 혼자 방향을 몰라서 방황하는 것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래서 소리는 못 질러도 두어 번 큰 기침을 하 기도 하였다.
이 모양으로 민은 얼마를 가다가 자기가 지금 어디를 목적 삼고 가는가 하고 우뚝 섰다. 어떤 자동차 하나이 질풍같이 몰아오는 것을 볼 때에도 민은 얼른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옳다, 우선 성순의 집으로 가 볼 것이다' 하고 너 무 지나온 것을 후회하면서 교동 골목으로 올라간다. 장국 밥 집 처마끝으로 고깃국 냄새 섞인 김이 나오며 웃고 떠드 는 일단의 사람과 중국 요리점의 이층도 민은 들여다보았 다.
민은 성재의 집 사랑 창 밖에 이르러서 귀를 기울였으나 인적이 없고 대문 밖에 가서 귀를 기울였으나 인적이 없다.
민은 석상 모양으로 한참이나 그렇게 섰다가,
"이리 오너라."
하고 불렀다. 그 때에야 사람의 소리가 나고, 문 열리는 소 리가 나더니 어멈이 가만히 대문을 연다. 민은 소리를 낮추 어,
"계신가?"
하였다.
"안 계셔요. 아까 나갔다가 들어오셨다가는 또 나가셨어요 -"
민은 실망하였다.
"성순씨는 아직 아니 들어오셨나?"
"아니요."
"마님께서는 어떠하신가?"
"지금 누워서 울기만 하셔요."
민은 그날 일어난 풍파에 관한 말을 물르려다가 그것도 부 질없는 일이다 하여 발을 돌려 오던 길로 다시 걸어 내려온 다. 무슨 생각이 나는지 가다가는 서로 가다가는 서로 하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