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69: 2

모친은 한 팔로 성재를 떼밀고 한 팔로 성순을 앞세 우면 서,

"비켜라. 나는 오늘 저녁에 영감 무덤 앞에 가서 죽을란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이냐. 자, 비 켜!"

하고 발길로 문을 차고 성순을 등을 떼민다. 성순은 문밖 에 나섰다. 성재는 모친의 앞을 막아서면서,

"어머니, 참으십시오! 가시기는 어디를 가셔요."

"죽으러 가지!"

"참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그러면 이 꼴을 하고도 살란 말이냐. 이 낯을 들고 사람을 대하란 말이냐?"

"기왕 그렇게 된 일을 어찌합니까. 글쎄 이제 어디를 가셔 요, 이 밤에."

"죽으러 가는 사람이 밤낮을 가리겠니?"

"아이고, 마님 참으십시오!"

하고 어멈이 운다.

성재는 문을 닫고 모친을 떼밀어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 다. 그러나 모친은 성재의 간지(諫止)하는 말은 듣지 아니하 고 다만 완력에 못 이기어 끌려 들어왔다.

"아니 놀 테냐."

"글쎄, 참으세요.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저도 죽겠읍니 다. 그러면 집안이 온통 망하지 아니합니까?"

성재의 '저도 죽겠습니다' 하는 말에 모친은 더 저항하지 못하고 아랫목에 누웠다. 성재는,

"어멈,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오게."

하였다. 과연 모친의 입술은 열병 환자 모양으로 초조하였 다.

성재는 모친의 고집을 알므로 아직도 안심이 되지 못하여 모친의 가슴을 쓸며,

"어머님께서 만일 돌아가시면 저도 따라 죽겠읍니다. 그러 니까, 저를 불쌍하게 알으시거든 그런 말씀은 아니 하셔야 합니다."

모친은 성재가 권하는 대로 냉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도로 누우면서,

"에그, 맙시사. 그런 변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고 이를 간다.

성재는 한번 더,

"어머님 참으십시오. 성순의 일은 제가 다 잘해 놓을 것이 니 어머님께서는 염려 놓으십시오."

하고 곁에 쭈그리고 앉은 어멈에게 '잘 주의하라' 는 눈 짓 을 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아간다.

성재는 캄캄하게 어두운 마당에 내려서며 고개를 둘러 성 순을 찾았다. 그러나 없다. 성재는 '성순아' 하고 두어 번 불 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사랑문을 열어 보았다. 거기도 없다. 대문은 반쯤 열리고 한길에는 인적이 고요하다. 성재 는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성순이가 어디로 갔어요."

하였다. 이 말에 모친은 깜짝 놀라 눈을 떳으나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어멈의 뛰어 나오며,

"네? 작은아씨께서 어디 가셨어요?"

"마당에도 없고 사랑에도 없는데."

"어디 가셨을까?......"

하는 어멈을 가까이 불러 성재는 귓속말로,

"잠시도 마님 곁을 떠나지 말게. 내가 돌아오기까지는 자지 말고 있게."

하고 사랑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어디로 나아가고 만다.

성재는 창황하게 계동 골목을 나서서 지나가는 인력거를 잡아타고 묘둥 민의 집으로 갔다. 아마 민의 집에 갔을 듯 하건마는, 민의 집에 갔다 하면 더욱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순이가 행여나 민의 집에나 가 있기를 바랐다. 비록 중죄 를 범한 음녀라 하더라도 그래도 동기다. 만일 수치를 못이 겨서 여자의 편심으로 자살이나 아니 하였나 하는 것이 몹 시 걱정이 되어 인력거더러 사오 차나 '빨리 빨리' 하였다.

제동서 묘동까지가 사오십 리나 되는 듯하였다. 인력거가 동대문통 넒은 길로 달려갈 적에 성재는 지나가는 전차와 행인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듯이 눈을 꼭 감았다. 무수한 사 람들은 성재의 집 비극은 염두에도 아니 두고 제가끔 제 생 각을 하면서 옆구리에 두 손을 넣고 빨리 달아난다. 그러나 지금은 저렇게 무관하던 군중들도 일조 성재의 집 비극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에는 그네는 옳다구나 하고 제각기 무책 임한 비평과 조매(嘲罵)를 발하며 웃고 즐길 것이다.

성재는 대문에 이르러 큰소리로,

"이리 오러나."

하였다. 놀래어 뛰어 나오는 민을 보고 성재는 다른 인사 랑새 없이,

"성순이 여기 아니 왔어요?"

"아니요."

하고 민도 놀라면서.

"들어오시지요."

"들어갈 새 없어요. 성순이가 지금 어디로 나갔는데, 여기 왔는가 하고......"

하며 실망한 듯이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민은 무슨 말 을 할는지 모르고 속으로 '큰 비극이 일어났고나' 하면서 성 재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