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습관이거나 무엇이거나 그가 원통해 하기는 마찬 가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혼을 못하셔요. 만일 이혼을 하 신다면 저는 다시 뵙지 않도록 하겠읍니다."
하고 성순은 길게 한숨을 쉬며 민에게서 물려 앉는다. 민 도 제자리에 돌아와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한 팔로 턱을 버티고 책상에 기대어서 연필로 붓장난을 한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 붉게 창을 비치고 저편 구석에 놓인 막폭 동 화폭(萬瀑洞畵幅)이 차차 거뭇거뭇하여진다.
"그러면 어찌하실랍니까."
하고 장난하던 연필을 책상 위에 던지고 성순을 향하여 돌 려앉았다. 성순은 화폭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다가,
"네?"
하도 다시 물었다.
"만일 성순씨께서 그러한 의견을 가지셨다 가면 장차 어찌 하시겠는가 말씀이야요."
"무슨 일이나 일합지요!"
"어떻게?"
"제 힘이 미치는 대로, 소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지. 그 도 못하면 간호부가 되든지...... 일 없어서 못 하겠읍니까?"
하는 성순의 구조는 마치 아무 근심 없는 사람의 것 같았 다.
"일생을?"
"그것이 운명이라면 일생이라도 합지요."
"운명!"
"참 운명이라는 말씀을 싫어하시지요?"
"우리에게는 운명이 없어요! 오직 우리의 힘에 달렸지요.
우리의 힘이 즉 운명이지요."
"그러면, 우시의 힘이 그렇다 하면 일생이라도."
하고 성순은 경련하는 듯이 픽 웃는다.
"그리고 저는 어찌하구요?"
"역시 일하시지요!"
"어떻게?"
"지금까지보다 더 힘 있게!"
하고 괴로워하는 민을 위로하는 듯이 다정하게 웃으면서,
"그것이 좋지 않습니까, 서로 힘껏 일하는 것이. 네, 그렇 지요?"
민의 얼굴은 더욱 불편하게 된다. 성순은 슬쩍슬쩍 그 불 편하여 가는 양을 본다.
"따로따로 떨어져서?"
"네. 그러나 정신으로만 합하여서. 그것이 좋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생각하고 기뻐해요."
하고 또 위로하는 듯이 웃는다.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민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진정입지요!"
"성순씨는 아직 처녀십니다. 다 갈 알으시지마는 모르시는 것도 있읍니다."
"에그, 제가 무엇을 알아요?"
"옳습니다. 아직 성순씨는 처녀시니까."
성순은 자기가 처녀라고 부르는 것을 더 반대하려고도 아 니 하고 다만 속으로만, (너는 무엇이라고 하든지, 천하 사람들이 다 무엇이라고 하 든지 나는 이미 처녀가 아니요, woman이다. 민의 처다.) 하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든든하였다.
민은 성순이가 아직 육적(肉的) 요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재미롭게 여겼다.
"정신으로만 서로 합하면 만족입니까?"
성순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정신으로 서로 합하는 이외에 이상에 또 합할 것이 있는 줄을 모르십니까."
"............"
"그것은 우정이야요. 정신으로만 합하는 것은."
"그러면 육으로까지 합해야 됩니까?"
"그렇지요. 거기 연예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완전한 결합이 끝나는 것이지요."
"육으로 합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중요하지요. 옛날은 육으로 합하는 것만을 전체로 알아 왔 읍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다수한 사람들은."
"그럴까요? 저는 육이란 생각을 하고 싶지 아니해요. 그러 한 생각을 하면 어째 신성하던 것이 더러워 지는 것 같아 요."
"육이란 그렇게 더러운 것일까요?"
"어째 더러운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성순씬 그 몸을 더럽게 생각하십니까?"
"몸이야 더러울 것이 없지마는......"
"그러면 무엇이 더러워요?"
"사랑에 육이란 관념을 섞는 것이 더러운 것 같아요."
"그것이 일종 미신이야요. 공연히 육을 천히 여기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 신성한 것이라 하면 육체도 신성한 것이지 요. 육만을 생각하는 것이 수적(數的)이라 하면 영만을 생각 하는 것은 신적이야요."
"신적인 것이 아니 좋습니까?"
"아니, 우리는 사람이니까 인적이라야 하지요. 완전한 영육 의 합치- 이것이 우리의 이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