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성재의 책임은 너무 중하다. 수다한 식구의 활계(活 計)가 이제는 전혀 성재의 손에 달렸다 할 수밖에 없다. 가 족이 일생에 먹을 것을 성재의 손으로 온 통 시험관에 넣고 말았으니 이제는 그것을 시험관에서 다시 찾을 수 밖에 없 이 되었다. 만일 성재의 계획이 성공이 되어 목적한 발명품 이 여러 나라의 전매 특허를 얻고 경성에 그 특허품을 제조 하고 큰 공장이 서는 날이면 성재의 몽상한 바와 같은 결과 를 얻을 수도 있지마는 만일 아주 실패하는 날이면 성재의 일가족은 거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을 할 떄마 다 성재는 몇 번이나 심화를 내었으며, 몇 번이나 장애게 대한 공포에 눌려 시험관을 온통 깨뜨려 부수고 온다 간다 는 말 없이 달아나려는 생각을 가졌으냐. 지난 사월의 대실 패 때에는 속리산에 들어가 중이 되어서 일생을 보내리라는 결심까지 하였다. 그때에도 성순더러 농담삼아,
"성순아, 나는 멀리로 달아날란다."
"예?"
"멀리로 달아나고 말 테야."
"왜요?"
"하려던 것이 되지는 않고, 부모에게 걱정만 끼치고...... 그 러느니보다 산간에 들어가서 중이나 될란다."
"에그,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셔요."
"내가 만일 성공만 하면, 만인에게 이익을 줄 것이지만 실 패하는 날에는 곯을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비록 세상을 위하여서 재력과 정력을 다 허비하고 죽어 버 린다 하여라도 내 계획이 성공만 못 되고 보면 세상이 그 공로를 알아 주기나 할테냐. 세상이란 자기네에게 당장 은 택(恩澤)을 주려고 전심력을 다하다가 실패한 사람에게는 수 교했다는 말 한마디도 아니하여 주는 법이다. 고래로 성공 을 얻어서 세상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자도 많건마는, 애만 쓰고 마침내 실패하여서 세상에서는 왔다간 줄도 모르는 사 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내가 성공에 달하는 운수를 만나기가 그리용이할 것이냐!"
이러한 말을 들을 때에 성순은변론으로 그 오빠를 설복하 려 하지 아니한다. 변론으로야 성순이가 성재를 당할 뻔이 나 하랴. 영리한 성순은 이러한 경우에 쓸 무기가 무엇인 줄은 잘 안다. 그래서,
"못합니다, 아무데도 못 가십니다. 가시려거든 시험하던 것 을 성공하고 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나는 어디까 지든지 오빠를 따라가서 실험실호 붙들어 올 터이야요. 저 시험관에서 오빠가 바라는 결과가 날 때까지는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 나는 따라가서 붙들어 올 터이야요."
'의지의 사람'이란 별명을 듣는 성재도 이 무기에 대항할 만한 의지는 가지지 못하였다. 그 차디 찬 듯한 성재의 흉 중에도 따뜻한 애정에 감동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참 신기 하다. 이리하여 성재는 새 용기를 얻어 가지고 다시 시험관 을 돌고 앉았다.
(성공하면 세상 일, 실패하면 내일.) 이러한 생각으로 날마다 실험실 사람이 되었다. 거지가 되 면 되고 성공이 되면 되고 아무려니 시험관과 사생 결단을 할 작정이다.
지나간 칠 년 동안에 실패에 실패만 겸하였지마는 그래도 경험도 많이 쌓았고 지식도 많이 얻었다. 날마다 시험관을 들고 앉았으니까 실험하는 수완도 매우 숙련하게 되었다.
이만한 지식과 이만한 숙련을 가졌으면 어디를 가든지 매 삭 육칠십 원 월급ㅇㄴ 받을 것이요, 얼마간 지나서 진수완 만 알아주게 되면 돈 백 원 월급은 무려하게 받을 것이다.
작년 추기에는 경성 공업 전문 학교의 초빙함을 받았고, 금 년 사월에는 연희 전문 학교의 초빙을 받았다. 더구나 신설 되는 연희 전문 학교에서는 실로 비사 후폐(卑辭厚幣)를 가 지고 청하였건마는 실력이 부족하다 함이 교수에 뜻이 없다 는 이유로 다 사퇴하였다. 성재의 뜻은 결코 백 원이나 이 백 원의 월급에 있지 아니하다. 그가 칠 년 전에 정한 목적 으로 더불어 일생을 마칠 것이다. '나는 이 일을 위하여서 세상에 났다. 그러하니까, 이 일을 위하여서 세상에 살아야 하겠다'하는 것이 성재의 결심이다. 아니, 결심이라기보다 신념이요,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