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순씨-"
하고 또 한번 불렀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하여 불러 놓 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성순도 처음에는 '네' 하고 말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이제는 그것을 기다리지도 아니한 다. 다만 민은 '성순씨' 하고 부르면 그만이요, 성순은 '네!' 하고 대답하면 그만이였다.
그러한 간단한 문답이 넉넉히 양인의 무한한 의사를 소통 한다.
민이 '성순씨!' 하고 뒷말이 아니 나오는 것은 속에 일어나 는 생각을 도저히 자기의 언어로 발표할 수 없음을 깨달음 이다. 인류가 의사를 상통하기에 쓰는 유일한 방편인 언어 는 극히 불완전하다. 일상의 평범한 사상과 감정은 십분 발 표할 수가 있다. 하더라도 일보 심령적 경역에 들어서면 우 리의 언어는 벌서 아무 능력도 없어지고 만다. 이 경우에 민은 가슴에 차는 생각을 통할 길이 없어서 다만 '성순씨!' 하고 부를 뿐이다. 민은 한번 다시,
"성순씨-"
하고 불렀다.
"네."
"확실히 성순씨가 여기 계시지요. 이것이(하고 한번 몸을 흔들며) 확실히 성순씨지요?"
"네."
"네, 성순씨지요?"
"네."
"어찌해서?"
"몰라요!"
"모르셔요?"
"몰라요!"
양인은 웃었다.
"성순씨-"
"네."
"왜 저를 사랑하세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취해서 사랑하 세요?"
"............"
"네, 제게서 무엇을 취하십니까. 저는 재산도 없고, 명예도 없고, 재주도 없고, 게다가 용기도 없고, 아무 경륜도 없고 한데...... 암만해도 성순씨가 저를 잘 못 보셨지요. 네? 왜 저를 사랑하세요?"
"몰라요!"
"몰라?"
"몰라요!"
"그러면 왜 사랑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사랑을 하세요? 이 유도 모르고 일생을 허하셨지요?"
"제가 바가(馬痂)인가 보지요?"
"왜?"
"그 이우도 모르니까."
"............"
"정말 모르겠어요. 처음에 뵈올 때에는 좋은 어름이 다 하 는 생각은 있었겠지마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모르겠 어요. 아무것도 저는 요구한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리라 하는 이유도 없고, 이러저 러하다가 사랑하겠다 하는 조건도 없고...... 도무지 웬 까닭 인지를 모르겟어요...... 그러니까 제가 바가지요!"
민은 아무 이유도 없고 요구도 없는 사랑이라는 말에 가슴 이 찔렸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하였다. "그래도 무슨 요구가 있겠지요. 비록 이유는 없다하더라도?"
"글쎄요...... 만일 무슨 요구가 있다 하면 그것은 어찌하면 (당신께) 기쁨을 드릴까, 용기를 드릴까 하는 것일까요?"
"뉘게? 뉘게 기쁨을 주세요?"
성순은 말없이 웃었다. 민도 웃었다.
"그러한 사랑을 변군에게 드릴 수는 없읍니까? 변군에게 드리시면 변군이 얼마나 기뻐할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더구나-"
하고 (성순은 민이 기혼한 남자라는 말을 성재에게 들었단 말을 하려다가 그치고),
"그렇게 약혼을 한 뒤에는 그렇게 할 양으로 힘도써 보았 어요. 그러나 아니 되었어요. 힘을 쓰면 쓸수록 아니 되어 요. 제 가슴에는 오직 한분밖에 용납할 수가 없어요...... 한 분으로 꽉 찼어요. 암만 때려도 매일 수가 없고 잊으려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벌써 처녀가 아니지요?"
"글쎄.......... 그럴까."
"그렇게 생각 아니 하세요?"
"글쎄......"
"저는 벌써 처녀가 아니지요. 이제 만일 다른 남자를 사랑 한다 하면 간음이지요?"
"글쎄......"
"왜, 글쎄 글쎄 하기만 하세요? 그렇다 하십시오."
하고 성순은 고개를 들어 민을 본다. 민을 경정치 못한 듯 이 눈을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