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것은 진실로 성순에게는 의외의 문제였었다. 그러 나, 성순도 이 간단한 경제라는 말의 무거운 압박을 깨달았 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사상의 힘을 누를 것이라고는 생 각하지 못하였다.
민은 성순의 말 없음을 보고,
"우리는 이 큰 사실을 등한히 하였읍니다. 등한이 할 수 없 는 것을 등한히 하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신단 말씀이에요?"
하고 성순은 민을 보았다. 민은 고민할 때에 으레히 그러 하는 버릇대로 두 손을 두 무릎 위에 놓고 눈만으로 천정을 바로보다가,
"그러니까 변군과 혼인하십시오. 오는 십 오일에."
"제가 아직도 처녀겠읍니까, 다시 시집갈 수 있겠읍니다."
"네? 그럼 처녀가 아니구?"
하고 민은 놀라는 듯이 성순을 보는 눈을 컸다.
"제가 처녀일까요?"
"아무렴, 처녀지요."
"어떤 정도까지를 처녀라고 합니까?"
민은 갑자기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유심하게 성순의 눈을 보았다. 성순의 눈에서는 일종 처창(悽槍)한 빛 을 발하는 듯하다. 성순은 다시,
"네, 어떠한 정도까지가 처녀오니까?"
"한번도 남자를 접하지 아니한 여자를 처녀라고 하지 않아 요."
"남자를 접하다 하면 어떤 정도까지?"
"한자리에서 잔다는 뜻이겠지요...... 성교를 한다는 뜻이겠 지요."
"그렇겠읍니까, 그뿐이겠읍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 니해요. 저는 한번 마음을 어떤 남자에게 허하면 벌서 그 여자는 처녀가 아니라고 해요. 육으로 허하는 것은 다만 그 종속물에 지나지 못한다고 해요. 마음으로 허한 뒤에는 이 미 육으로 허한 것이 아니야요? 저는 벌써 처녀가 아니올시 다. 저는 벌써 시집간 여자예요. 그러니까 이제 다른 데 시 집을 간다면 간음이 아니면 재가예요. 제가 이제 변씨에게 시집을 간다 하면 저는 이 고기 덩어리를 따로 떼어서 변씨 에게 드리는 것이외다. 한번(당신께) 드린 마음을 다시 찾을 수가 있겠읍니까."
하고 성순은 힐문하는 태도로 민을 보았다. 민은 성순의 정조관을 박박할 만한 논거를 얼른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어린애 같던 성순이가 어느 틈에 이러한 조직적 의견을 얻 게 되었는가 하였다. 성순은 얼굴이 붉게 되도록 흥분하여,
"좋습니다. 만일 저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이 불편하시거든, 불만족하시거든 만족하실 길을 찾으십시오. 제가 일생에 나 아갈 길은 환합니다. 벌써 의심없이 확정이 되었읍니다. 저 는 조금도 실망도 아니하고 ...... 네, 굳세게 살지요. 저는 저대로 살지요!"
하고 흑흑 느끼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성순의 머리에 꽂힌 얼레빗 등이 희박한 석양빛에 번쩍번쩍한다. 민은 하염없이 한숨을 쉬면서 성순의 하얀 목과 등을 보았다.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없었다.
민은 새로운 결심을 한 듯이,
"여봅시오-"
하고 불렀다. 그러나 무답.
"성순씨!"
"............"
"울음을 그리고, 말을 해야지요."
"............"
"자 고개를 듭시오."
하고 성순의 등을 흔들었다.
"말씀하세요."
"자, 바로 앉으세요."
"말씀하세요! 이러고도 듣습니다."
하고 성순은 민의 '머리를 들으세요' 하는 말이 어머니가 귀해 하는 아기의 어리광을 듣는 듯하여 가만히 소리를 내 어 웃었다. 민도 그 웃음 소리를 듣고 웃엇다. 둘이 외교적 단판을 하는 듯하던 기분이 없어지고 양인은 동시에 충풍 같은 애정의 순미(醇味)를 깨달았다. 민은 감격에 못 이기어 일어나서 성순을 안았다. 성순도 돌아앉으며 민을 안았다.
성순의 민의 가슴에 안긴 귀는 민의 항진(亢進)한 심장의 고 동을 들었다.
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성순씨-"
"네!"
그리고 한참 침묵하였다. 그 이상의 더 말할 것도 없고 필 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