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은 한참이나 무언의 포옹 속에 있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깨달아서 마주 앉을 때에는 양인의 눈에 눈 물이 있었다.
민은 단도직입으로 성순에게 물었다.
"대관절 어찌 되었읍니??"
"편지 보셨어요?"
"네!"
"놀라셨지요?"
"놀랐었지요."
"아마, 오빠가 제가 여기오는 줄을 아는 게야요. 말은 아니 하지마는, 그러한 눈치가 보여요. 그래서 어저께는 저를 부 르시더니 '오는 십 오일에 예식을 하리고 작정하였다. 이번 에는 네가 아무러한 핑계를 하여도 아니 될 터이니 어서 시 키는 대로 해라......' 그러셔요. 이제는 집에서 저를 몸쓸 계 집애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요."] 하고 눈물을 흘린다.
민은 무구(無垢)한 처녀가 자기를 위하여 고민하는 양을 차 마 ㅂㄹ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순씨!"
하고 불렀다. 성순은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놀래어서 고개 를 들어,
"네, 용서합시오. 모두 제 죄외다."
"............"
"제가 성순씨를 사랑하여 드릴 권리가 없어요. 제가 사랑하 는 것이 잘못이야요. 더구나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한 일이 잘못이야요. 그 때에 제가 그러한 말만 아니 하였더면 성순 씨에게 이러한 슬픔이 있을 리가 없읍니다. 모두 다 제 책 임이야요. 그러니까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하는 성순의 눈은 여물었다.
"잊어 주십시오. 지금까지 지낸 일을 꿈으로 알아 주십시 오."
"그러면?"
"변군과 혼인하십시오. 제 일은 조금도 염려 말으시고 그렇 게 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가 있겠읍니까?"
하는 성순의 어조는 노기를 띤 듯하였다.
"부득이하니까."
"부득이합니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달리 방침이 있읍니까?"
"지금토록 그렇게 생각하고 오셨읍니까?"
"지금토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여 보니 그것이 잘못이야요."
"어찌해서요?"
"아니 그렇습니까? 위선 성순씨는 집을 배반하셔야지요?
어머님도 버리고 오라버님도 버리셔야지요? 그리고......"
"그것은 어느 어른이 시키는 것입니까, 또 그것은 벌써 결 심한 것입니까. 애초부터 그러한 결심이 없었읍니까."
성순은 이제 울지도 아니하게 되고 정신이 주락(酒落)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결심은 하였지요. 그러나 미처 생각 못한 것이 있 어요. 중요한 무엇을 등한히 한 것이 있어요. 실사회에 경홈 이 없으니까, 한갓 이상으로만 달아나고 실제를 잊어버렸어 요."
"실제란 무엇입니까?"
"네, 말씀을 들읍시오...... 우리는 실제를 등한히 하였어요.
그것이 잘못이야요. 실제를......"
"글쎄, 실제가 무엇입니까?"
"글쎄, 말씀을 들읍시오. 가령 성순씨가 집을 배반한다......
그리고는 어찌할 텝니까?"
하고 성순을 보았다. 성순은 숨결만 큰 따름이요 말이 없 다.
민은 말을 이어,
"네, 그리고는 어찌할 텝니까?"
"유(당신)을 따라가지요."
성순은 처음 민에게 대하여 이인층의 대명사를 사용하였 다.
"어디로?"
"아무데든지!"
"네, 그것이 이상뿐이란 말씀이외다. 첫째 사람은 경제를 떠나선 살 수 없지요."
"경제?"
"네, 경제! 사람은 경제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이요."
"그런데?"
"그런데 우리가 만일...... 만일...... 이상태로...... 만일 같이 된다 하면 사회는 우리를 버리겠지요. 성순씨의 집에서는 성순씨를 버릴 테요, 내 집에서는 나를 버리겠지요. 그리고 거듸 모든 직업이 우리를 거절 할 것이 아닙니까. 제가 지 금 몇 학교에 다니는 것도 내어 놓아야겠지요...... 저는 실로 이러한 말을 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괴롭습니다마는 사실은 사실이지요. 엄연한 사실이야 어찌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무경험한 우리는 지금껏 이 사실, 무거운 사실을 잊었어요!"
양인은 침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