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네에게는 실로 처음 듣는 말이다. 비록 지금까지 시집이라든지, 아내라든지, 여자라든지 하는 제목으로 남의 말을 듣기도 하였고, 자기네의 입으로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하더라도 '시집이란 무엇이뇨', '아내란 무엇이뇨', '여자란 무엇이뇨'이렇게 완전한 명제로 된 문제를 생각하여 본 적은 없었다. 그네의 모친이나, 조모나, 자매나, 아마 그네의 부친 이나, 조부나, 형제까지도, 또 아마 그네들 교육하는 남녀 선생까지요.
그네는 성순(性淳)의 간단한 이 질문에 깜짝 놀랐다. 그네 는 지금까지 각각 스스로 생각하기를 보통 학교를 졸업하였 고,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하여 산술도 할 줄 알고 대수도 일차 일원 방정식까지는 아직 잊어버리지 아니하였고, 일본 말도 회화를 넉넉히 하고, 담은의 쉬운 곡조나마 학교에 비 치한 풍금도 울릴 줄 알고, 그네는 서서제(瑞西製) 시계를 차서 오전 오후 몇 시 몇 분(초는 아직 사용하여 본 적이 없지마는) 이라고 불러도 보았고, 그 중에도 어떤 이는 ABCD까지도 알아서 자기네는 조모보다, 모친보다는 물론이 어니와, 같은 시대의 모든 여성 동포보다 훨씬 뛰어난 자로 자임하였다. 유식한 자로 자임하였다. 시집을 가려고 자기의 지아비될 만한 자격을 가진 남자가 없음을 한탄 할이만큼 그만큼 그네는 빼어나게 교육을 받고 수양이 있는 이로 자 임하였으며, 남자측에게서도 그네아 같은 여자를 아내로 삼 음을 이상으로 알이만큼 그만큼 그네는 교양 있는 자로 인 정함을 받았다. (남자 자신이 그 보다 높은 교양이 없으니 까, 고등 여학교를 졸업한 여자만 하여도 너무 교육이 높은 것을 한할이만큼 그렇게 남자 교육이 낮으니까, 실로 금일 의 조선은 고등 보통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알아서, 남겨간 차교(此校)를 졸업하면 이미 사회의 지식 계급에 참여할 자 격을 얻는 사회니까.) 그렇게 높게 자임하였던 것이 '시집이란 무엇이뇨', '아내란 무엇이뇨', 어미란 무엇이뇨', '대체 여자란 무엇이뇨' 하는 자기네에게 가장 가깝고 긴절한 문제의 제출을 당할 때에 일언 일구가 대답도 발할 수 없는 자기네인 것을 생각 할 때에, 그네가 만을 조금이라도 총명이 있는 여자일진대 반 드시 더할 수 없는 수치와 경악을 느꼈어야 할 것이다.
명운이나, 선경이나, 그네는 자기네의 무식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옳은 ㄱ서인가, 모로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를 의심한다. 그리고 이제의 성순을 쳐다본다.
성순이가 어찌해서 그리한 생각을 하였을까 하고 이상히도 여겨 본다.
무론 그네는 자기네가 그 빈약한 두뇌 속에 저장하였던 것 을 온통 떨어 놓더라도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없 을 것이다. 그네의 두뇌는 마치 그네의 조그마한 보퉁이와 같다. 그네는 알록알룩한 골무며, 귀떨어진 바늘이며, 얼쑹 덜쑹한 비단 헝겊 조각이며, 학교에서 선생이 주필로, 구십 이라든지 팔십이라든지 매겨 준 습자 종이며, 사진 조각이 며, '오늘은 비가 왔다. 낮잠을 자다가 꾸중을 들었다' 하는 일기책, 사랑하는 동창에게서 받은 편지장.......
이러한 것을 귀하게 귀하게 사 둔다. 이것이 그네의 세간 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온통 떨어 놓는 다 하면 그것이 무엇 이랴. 그네는 이 보퉁이를 아침마다 저녁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 보고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걱정도 한다.
그가 슬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보퉁 이 속에 있는 비단 헝겊과 같은 슬픔이요, 기뻐한다 하더라도 잃어 버렸던 골 무를 얻은 기쁨이거나, 쓸데 없는 수다를 늘어놓은 친구의 편지를 받는 기쁨에 불과한 것이다.
경운의 슬픔은 아마 이것보다는 근저가 깊을 것이다. 그는 인생의 여러 가지 사실에 직접으로 다닥뜨려서 그 의외임에 놀랄 뿐이요, 공부할 뿐이요, 증오할 뿐이요, 즉 감정으로 숭응할 뿐이요, 이상으로 그것을 해석할 줄을 모른다. 그의 슬픔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 문답이 잇는 끝에 선경은,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를 여태껏 모르고 있었어 요. 또 알아 보려고도 아니하였어요. 또 누가 우리더러 알아 보라고 한 일도 없었어요."
"우리가 알아야지. 누가 우리를 위해서 알아 주겠어요. 우 리의 일을 우리가 해야지요."
하고 성순은 확실히 자기가 좌중의 선각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종 자부심의 쾌미를 얻었다.
순명은 가만히 생각만 하고, 명운은 금야에 얻은 지식을 곧 강원도 잇는 경운에게 편지하기로 작정하고 경운이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였다. 일동은 성순이가 자 기네보다 얼마큼 우월한 점이 잇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 리고 돌아갈 때에는 각각 전에 없던 무슨 생각을 가지고 가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