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들에게 들은 말을 종합하건대, 성순의 동창의 근황은 대개 일러하다.
몇 사람은 보통 학교의 훈도가 되어 시골에 내려가고, 그 네들은 대개 서울 있는 친구들에게 '슬프다. 괴롭다. 세상이 재미 없다. 죽고 싶다. 밤마다 울기만 한다. 나는 너밖에 사 랑하는 사람이 없고, 믿는 사람이 없다. 너도 변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여 다오. 우리 둘이서 손을 마주 잡고 세상을 살아가자.....' 이러한 감상적, 염세적 편지를 자주하고, 몇 사람은 졸업 후 집에 돌아가 있는데 부모가 자기를 이해하 지 못한다. 그러니까 슬프다. 자꾸 시집을 가라고 조르시는 데 시집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슬프다. 세상이 재미 가 없다. 그러니까 죽고만 싶다. 다만 너만 사랑한다...... 이 러한 편지.
또 몇 사람은 어떤 남자와 철석같이 맹세를 하였더니 마침 내 다른 데로 장가를 들었거나, 혹은 처가살아있거나, 혹은 뜻대로 가정을 이루었지마는 며칠이 못 되어 염증이 났거 나, 혹은 시집은 갔더니 시부모와 마음이 맞지 아니하여 쫓 겨 왔거나, 혹은 동경으로 유학하러 갔거나, 혹은 사진 결혼 을 하여 가지고 호놀룰루로 갔거나......, 대개 이러한 소식이 요, 그 중의 하나는 지난 여름부터 기생이 된 자도 있다.
이러한 말들을 그네는 자기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말같이 조롱하여 가며 웃어 가며 말한다. 그 중에 아내 잇는 민(閔) 을 사랑하여 가정과 사회에 모반을 일으키려 하는 성순을 집어 넣으면 성순의 동차의 근황 보고를 완성할 것이다.
일동은 한참이나 열심히 자기네가 아는 동창의 근황을 말 하다가 모두 침묵하였다. 그리고는 각각 자기네의 전도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네의 생각에 자기네는 결코 그러한 불행한, 또는 부도덕한 길을 걷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네도 시집갈 생각을 아니하는 것이 아니다. 그네는 정신 으로 보면 아직 극히 유치하지마는 (그네뿐이 아니라 전 사 회가 다 그러하지마는) 생리적으로는 성숙할 수 있는 대로 다 성숙하였다. 그네는 지아비 그리운 줄을 알 만하고 또 혼인하는 날이면 곧 자녀를 생산할 만 하다.
그네는 밤에 자리를 들어갈 때에 길에 사람이 있었으면 하 는 생각이 나고 행복스러운 젊은 부부가 가지런히 잇는 것 을 볼 때에 부러워할 줄 안다. 그네가 무수한 남자 중에는 자기의 사랑하는 지아비가 있음을 믿고 눈을 들어 어느 것 이 그 사람인가 찾는다. 사람도 자 나고 돈도 있고 재주도 있고 학문도 있고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여 줄지 아비를 찾 는다. 겉으로는 그러한 생각이 없는 체하지마는 마음 속이 는 잠시도 그를 찾기를 쉬지 아니한다.
그네는 아무쪼록 시집이라는 말을 아니하려 하고, 만일 이 따금 한다면, 자기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인 듯이, 자기는 조금도 거기에 흥미를 가지지 아니하는 듯이 말한다. 이것 이 그네의 행세다. 가장 잘 행세를 하려면 시집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아니하고 남이 그러한 말을 할 때에는 귀를 기울이어 듣지도 아니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네는 특별히 행세를 잘하려 하는 여자는 그러한 말이 들릴 때에는 얼굴 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려 염오의 정을 표하려 한다. 될 수만 있으면 나는 그러한 것을 당초에 염두에 두지도 아니 하오, 하는 뜻으로 남에게 보이려 한다. 명운이나 순명은 시 집이라는 말을 하되 남의 일같이 하는 사람이요, 선경은 당 초에 하지도 아니하려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네는 우 (愚)한 자이다. 여자의 일생이 혼인같이 중대한 사건이 없다 할진대(남자도 그렇지마는, 남자에게도 국사 이외에는 혼인 이 가장 둥한 일이지만 여자에게는 그보다 더하니까) 여자 는 항상 혼인을 생각하여야 하고 기회 있는 대로 그것에 관 한 지식을 얻으며 토론을 하여야 하겠거늘, 그네는 학교에 서도 배우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배우지 못하면서, 혼자 생 각해 보려고도 아니 하고 친구나 선배에게 문의하여 보려고 도 아니한다. 그러하다가 그네는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는 사정하에,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는 남자에게 어떠한 장래일 는지도 고려함이 없이 시집을 가서, 아내가 무엇인지 알기 도 전에 아내가 되고, 어미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어미가 되어 자기네의 선조의 실패한 생활을 꼭 그대로 되풀이한 뒤에, 마침내 사람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사람의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성순은 일동을 향해,
"그래 다들 시집을 안 가고 혼자 늙으실라우?"
하며 차례로 일동의 안색을 보았다. 이 대에는 명운도 '그 럼!'하지 아니하고 무슨 생각을 한다. 성순은 말을 이어,
"시집이란 대체 무엇인가요. 아내란 대체 무엇일까요? 여자 란 대체 무엇일까요?"
하였다.
일동은 말없이 무슨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