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51: 1

성순은 오래간만에 여러 동창 학우를 만나서 자기와 함께 졸업한 여자들의 근상(近狀)을 알아보려 하여 밀감을 먹어 가며,

"경운(景雲)이는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물었다.

경운이라는 여자는 반 중에서 가장 미모로 유명하였고 장 낭꾼 남자들의 익명 편지도 제일 많이 받기로 유명(類明)이 라는 여자가 바로 곁에 앉은 얼굴 길쭉한 여자의 무릎을 툭 치며,

"경운의 일이야 명운(明雲)이가 잘 알지요. 꼭 한 주일에 두 번씩은 편지가 오니까......"

명운은 부끄러운 듯이 순명의 다리를 꼬집으며,

"응, 거짓말!"

"내가 거짓말이야? 성순씨, 이 애 품을 보십시오. 경운의 편지가 스무 장은 있을 테니, 만지장설에......"

"거짓말이야요. 또 그런 말 할테요?"

하고 명운은 순명의 귀를 잡아당긴다.

"아야, 아얏! 이것 놓시오, 안 그래, 안 그래."

"그러면 몰라도."

명운은 순명의 귀를 놓는다. 성순은 그것을 보고 한참 웃 다가,

"아니, 경운씨가 어디 가 있는데?"

"저는 강원도 보통 학교에 훈도를 갔는데, 무엇이 그리 슬 픈지, 슬퍼서 죽을 지경이라구려. 밤낮 죽, 그것들이 밉던 지...... 글쎄, 그게 무슨 꼴이야요. 아이 참...... 부끄럽지도 않는가 봐."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그것들이, 남자들이 체면얼 아나...... 그 짐승 같은 것들이......"

하고 명운이가 자기의 말에 찬성을 얻는 것이 기쁜 듯이 웃는다.

"지금은 없지마는 토지 조사국 측량 기수(測量技手)들은 어 쨌어요. 또 ○○학교, ○○학교, 그것들은 공부는 아니하고 밤낮 여학생 따라다닐 생각들만 하나 보지...... 과연 경운의 말이 옳아! 그까짓 것들이 사람이람!"

하고 또 하나 뚱뚱한 여자가 말한다.

"그러면 모두들 시집은 아니 가겠네. 그렇게 남자를 미워하 니깐......"

하고 성순이가 웃는다.

"시집은 왜 가? 우리도 악마가 되게?"

하고 명운은 흥분한 어조로 말한다.

"다들 시집 아니 간다고 하더니 그래도 다 가데."

하는 명순의 말에,

"나는 아니 갈 테야! 이제 내가 시집을 가나 보구려."

하고 명운은 결심이 굳음을 보인다.

"무어 다 그렇지, 다 그래."

하고 명운이가.

"경운이가 왜 그렇게 남자를 미워하는지 알기나 하우? 한 번은 동대문 밖에서 ○○학교 학생한테 하마터면 큰 욕을 볼 뻔했지. 또 한번은 어떤 녀석이 학교엘 왔다지?"

하고 순명이가 명운의 공격을 예방하느라고 한 판을 내어 명운을 버티면서 말한다.

"글쎄, 어떤 남자한테 그렇게 곯았는지, 편지마다 남자 원 망이지...... 남자란 모두 악마다, 야수다, 어두기 여지에 대 하여는 조금도 믿을 수 없는 사기자다. 나는 일생에 결코 남자란 것을 믿지 아니한다. 명운이 너도 결코 남자를 믿지 말아라. 남자는 우리 여자의 원수요, 대적이요, 악마다......"

명운은 순명이가 자기의 사랑하는 경운의 진정으로 나오는 말을 조롱거리로 여기는 껏이 불쾌하여 낯빛을 붉히면서,

"에그, 그럼 남자가 안 그건가? 남자야 다 악마지. 그래, 순명은 남자를 천사같이 믿으오?"

지금토록 방긋방긋 웃으면서 가만히 듣고만 앉았던 얼굴 동그스름하고 극히 침착하여 보이는 선경이가,

"참, 그렇기는 그래. 남학생들은 길게 나서 다니면 여학생 만 보는 게야. 왜 우리도 그런 일이 아니 있소?...... 저 성순 씨하고 나하고 박물관에 갈 적에 ○○학교 학생 둘이 뒤로 따라오면서 '여보시오, 날이 춥습니다. 저희들도 그 부드러 운 비단 목도리로 좀 싸 주십시오.' 그러지 않습디까. 그리 고는 박물관에 들어가서도 꼭 뒤로 줄줄 따라다니지 않아 요?...... 에그, 그 때에 어떻게 무서웠는지. 어떻게도 집에 투서를 하여서 큰 책망을 받았는지. 또 한번은 철석 같이 혼인을 하자고 약속한 녀석이 후에 알아보니까 아내가 시퍼 렇게 살아 있더라는구려. 그리고(소리를 낮추며) ○선생 말 이요, 그것이 경운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아우?그것 만인가, 왜 남자를 아니 미워하겠어요, 글쎄."

"참 여보, 성순! 저어, 김 영인(?永仁)씨 말이요, 영인이가 왜 홍(洪) 무엇인가 한 유학생과 혼인하지 않았소?"

"그랬나요?"

"그런데, 집에 가 보니까 본처가 있더라는구려. 그래, 밤낮 운대...... 글쎄, 저것을 어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