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48: 2

오랫동안 자던 팔각목종이 다시 돌아가기를 시작하고, 오 랫동안 개켜 넣었떤 꼬깃꼬깃한 실험복을 입은 성재가 아침 부터 저녁까지 주정등 불에 실험관을 쬐이기 시작하였다.

실험관에서 나오는 악취 잇는 기체를 내어 보내기 위하여 한길로 향한 들창이 자주 열리고, 마친 그 앞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외의 악취에 코를 쥐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성순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아침마다 성재의 실험 기구를 정돈하여 주고 할 수 잇는 대로 여러 가지로 조력도 하여 주었다. 그러나, 오후 네 시 반의 담화 시간은 없었다. 부인 은 실험 시간 동안 실험실에 아니 들어오지마는 시간이 끝 날 만하면 결코 성재의 방을 떠나지 아니하려 하였다. 이러 한 일도 있었다.

"책을 좀 보겠으니 어린애를 데리고 안에 들어가시오."

"왜 내가 있으면 책이 안 보여져요?"

"좋은 방에 사람이 많이 앉았으면 정신이 모여야지...... 왜 그렇게 무슨 말을 곡해를 하오?"

할 때에는 성재는 성이 났다.

"그러면 가지요. 집에 있는 것이 그렇게 보기 싫으면 아주 가고 말지요."

하고 부인은 울기를 시작한다.

이러면 성재는 보던 책을 덮어놓고 자기가 안으로 들어간 다.

부인은 진정으로 성재를 그리워한다. 진정으로 성재의 곁 을 떠나기를 싫어한다. 전에도 이러한 정은 있었지마는 빈 한한 생활이 싫은 것과, 천성으로 타고난 자만과 고집을 이 기지 못하여서 친정에 가 있었으나, 친정의 가족들이 자기 를 좀 냉대하는 것을 보고, 또 이번에 성재가 중병으로 앓 는 것을 볼 때에, 역시 자기는 성재밖에 사랑할 사람이 없 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줄을 결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입 으로 행랑, 행랑 하고, 성재와 자기와의 침실을 천히 여기고 수치로 여기면서도 다시 친정에 갈 생각도 아니 하고 아무 쪼록 성재의 곁을 아니 떠나려 함이다. 그러나, 부인은 자기 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하여서까지도 정다운 양을 보일 줄 을 모르고, 말이나 행동이나 다정하게 온아하게 할 줄을 모 른다. 자기의 성미에 맞는 일이면 빙그레 웃기만 하고 말지 마는, 자기의 의사에 틀리는 일이면 곧 안색을 변하고 어기 (語氣)를 높이며, 조금 심하게 되면 눈물을 흘린다.

그는 그처럼 속으로는 성재를 위하면서도 성재에게는 한번 도 쾌감을 주어 보지 못하고 항상 반ㄱ담을 산다. 자기는 모처럼 성재를 위하여 정성껏 무슨 일을 하였을 때에 성재 가 불쾌한 빛을 보이면 심히 불쾌하여지고 반항심이 나고, 심지어 성재를 증오하는 마음까지 난다. 이리하여서 부인은 혼인 생활 십여 년에 하직 한번도 즐거움이라든지 가정의 재미라는 맛을 보아 보지 못하고 항상 불쾌와 반항과 증오 의 생활을 보내었다. 더구나 성순이가 용하게 성재의 비위 를 맞추어 가지고 하인들의 비위까지 맞추어 가는 것을 볼 때에 부인은 화증이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모친도 부인에지지 아니하는 고집통이라 가끔 고집이 충돌 하여서 불꽃을 날리는 수도 잇엇으나, 모친은 어버이의 관 도를 차리고 부인은 며느리의 체면을 보아서 대사는 아니하 고 말았다. 그러나, 모친은 며느리를 벼릇없고, 철없고, 배운 것 없는 계집이라 하여 속으로는 천히 여겻고, 며느리는 모 친을 무시하고 시골뜨기 고집스러운 할멈장이라고 속으로 밉게 여겼다. 만일 성순이라는 탄력 많고 명민(明敏)하고 부 드러운 중개자, 조화자가 없엇던들 고부(姑婦) 간에는 지금 토록 어떠한 상서롭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성순이가 중개자, 조화자가 되는 것이 마치 자기보다는 품격과 지위가 훨씬 높음을 표하는 것 같아서 부인에게는 몹시 불쾌하고 미웠다. 그 중에 있어서 가련한 성훈의 부인은 마치 벨리에(白耳義)나 스위스( 西) 모양으로 세계의 변국에는 아무 상관 없는 중립국으로 있었다. 이렇 게 성격이 합하지 아니하는 개인의 일단이 무슨 인연으로, 무슨 목적으로 한 가정이라는 범위 안에 모여 있어서 주야 로 대소의 비 희극을 연철한다. 그네는 무슨 인연으로 모였 는지, 또는 자기네의 공동한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즉 자기네는 어찌하여 한데 모여 살게 되었는지, 또는 무엇 을 당할 양으로 한데 모여 사는지를 모르면서 그래도 서로 떨어지지는 못한다 하는 무의식적 단결하게 살아 가는 것이 다.

그것을 생각하려면 생각할 만한 성재도, 이작 그것을 생각 하리라는 생각도 없었고 또 실험관에 몰두하여 그러할 여유 더 없었다. 그러나, 그 단체의 일원되는 성순은 이미 혁명 사상을 품게 되어 언제 그것이 폭발할는지 모른다. 굉연(轟 然)한 폭성을 들을 때에 그네는 응당 끽경(喫驚)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