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하고 성순은 한번 돌아누웠다.
(무엇이나 해 보아야지!) 하고 성순은 입을 힘껏 다물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도 일종 모험이다. 대모험이다!) 하고 성순은 월광에 희미하게 보여지는 천정을 조려보았 다.
(성재의 시험관의 실패가 죄가 아니라면 내가 설혹 실패를 한들 무슨 죄가 되랴.) 하고 성순은 조금 베개에서 들었다.
그러나, 이미 변과 약혼이 성립된 것과, 모친과 성재가 어 디까지든지 자기를 정복하려 할 것과, 자기가 민을 사랑한 다는 말을 들을 때에 세상이 조롱하고 욕설할 것을 생각하 매 미상불 한숨이 아니 나올 수가 없었다. 생후에 아직 한 번도 거역하여 본 적도 없는 모친과 성재의 말을 거역할 것 도 고통이었고, 자지가 그 말을 거역하기 때문에 모녀의 정 의, 남매의 정의, 그렇게 따뜻하고 굳건하던 정의를 상하게 될 것도 슬펐다. 생래(生來) 근 이십 년간 자기의 따뜻한 사 랑의 보금자리이던 가정에서 나기는 떠나야 된다. 평화 속 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반으로, 적대 행위로 떠 나야 된다.
자기는 지금 모친에게 대하여, 오빠에게 대하여, 가정에 대 하여, 몇 수천년 전해 오던 인습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것 이다. 내가 이러한 반심을 품은 줄을 모르는 모친과 오빠는 안신하고 편안히 잔다. 내가 이러한 반심을 품은 줄을 모르 는 서울은 안심하고 편안히 잔다. 가정도 이럭저럭 평화 속 에 있고, 사회도 (비록 조그마한 파문은 있다 하더라도) 이 럭저럭 평화 속에 있다. 그러나 내 반심이 드러나는 날에는 모친과 오빠와 가정과 사회는 내게 향하여 선전을 포고하고 포격을 가할 터이요, 나도 그네들에게 대하여 선전을 포고 하고 포격을 가할 것이다.
'내가 그네의 앞에 항복을 하던지, 그네가 나의 앞에 항복 을 하는 날까지 결코 빼어 들었던 칼은 다시 칼집에 들어가 지 아니할 것이다.'(카이제르의 말) 그네는 중(衆)하다. 대 (大)하다. 그러나, 나는 과(寡)하다. 조롱과 해학(諧謔)으로써 임한다 하더라도 나는 피와 생명으로써 임하여야 할 것이 다. 그러다가 다행히 이기면 사회와 돋거의 주권을 그네의 손에서 빼앗아서 내 손에 잡을 터이요, 불행히 천궁도최(天 窮刀催)하여 지면 내 오체는 모반자의 비명(鄙名)하에 조작 (鳥鵲)의 밥이 될 것이다.
상술한 사상과 그 중에 인용한 비유와 문자는 지금까지 민 의 말에서 얻은 것이다. 민이 자기의 낡은 사회에 대하는 태도를 말할 때에 쓰던 것을 성순이가 지금 응용하는 것이 다.
성순의 결심은 굳게 되었다. 원래 의지가 강한 계통인 데 다가 꽤 자각 있는 여자의 결심이라 좀처럼 변하지 아니할 것이다. 성순은 끝까지 이 결심으로 나아가리라 하였다. 그 리고 성순은 자기가 민에게 대한 사랑을 검사해 보려 하였 다. 지금토록 성순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려 하 였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는 그것을 분석하려고도 아 니하였고 더구나 이름을 짓는다든가, 그 정도를 알아 보려 고도 아니 하였다. 그는 그러하기를 두려워하였고, 될 수만 있으면 잊어 버리기를 바랐었다. 그리하여 아무 풍파도 일 으키지 말고 남들이 하는 것과 같이 평온 무사한 중에서 만 사를 처리하여 가려 하였으며 그것이 교육하고 얌전한 여자 의 마땅히 취할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러한 시대는 다 지나갔다. 아까 회당에 가던 길에 전 사 관 학교 앞에서 민을 만나는 순간에 다 지나가고 말았다.
그때까지 성순은 어떤 전제 왕국의 일신민에 불과하였으 나, 그때부터 성순은 이미 지존의 여오아이다. 만사를 자기 의 지혜대로 정의대로 처결하여야 할 군주다. 그러니까, 그 는 분명히 자기의 사상과 목적을 검사하여 볼 필요가 있다.
성순의 상상의 눈앞에 민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극히 냉정 한 눈으로 민의 안면의 각 선과 각 점과 어깨와, 가슴과, 다 리와, 팔과, 손과 모든 것을 일일이 해부하여 보고, 다시 그 각 부분을 맞추어 일체를 성한 뒤에 전체를 조화며 심매트 리며 색채며 하모니를 자세히 검사하여 보았다. 키는 중키, 얼굴이 좀 ㅂ좁고, 콧마루가 날카롭고, 눈이 크고, 입술이 엷고, 이마가 넓고 희고, 귓바퀴가 투명하고, 말소리가 좀 여성답게 고음이지마는 괜찮고, 성질은 온화하여 나약한 듯 하면서도 속 깊이 굳센 힘이 흐르고 열정적이요, 천재적이 요...... 이렇게 분석하였다가 종합하였다 한 끝에, '내가 그의 무엇을 사랑하나?그의 얼굴? 재주? 온화한 성 질? 목소리? 입? 눈?' 이렇게 자문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그의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 아니 그것도 아니다. 모두 아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