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43: 1

회당에서 돌아와서 성순은 아무쪼록 가족의 얼굴 보기를 피하고 자리에 들어갔다. 결코 잠이 들 리가 없었다.

이제는 자기의 전도는 작정이 되었다. 자기는 민과 일생을 같이할 것이다. 평생에 사모하던 사람과 일생을 같이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다른 걱정은 다 잊게 된 것은 잊어버려지 고 오직 가슴 속에 기쁨만 꽉 차는 듯하였다. 성순은 민이 지나간 일개월 동안에 자기를 위하여 얼마나 걱정을 하였을 것, 괴로워하였을 것, 슬퍼하였을 것을 상상하여 안다. 왜, 내가 벌써 그에게 내 뜻을 고하여 기쁘게 하여 드리지 아니 하였는가하고 후회도 하여 본다. 그러나, 왕사(往事)는 왕사 요, 이제부터는 민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어 민이 늘 몽 상하던 대로 명년 동경 미술 전람회에는 큰 출품을 하게 하 리라. 그것이 입선이 되고 특선이 되고, 익년 것이 또 입선 이 되고 특선이 되고...... 이리하여 불쌍한 민으로 하여금 조 선 미술사의 제일 페이지를 차지할 대미술가가 되게 하리 라.

성순은 민이 하던 말을 잘 기억한다. 자기가 미술을 배움 은 조선인에게 복된 눈 하나를 더 주려 합니다. 사시(四時) 의 산색(山色)을 보고 기뻐할 줄 아는 눈, 석양에 물든 서천 의 구름을 보고, 모옥(茅屋) 가에 홀로 핀 매호를 보고, 오 색으로 수를 놓은 홍엽(紅葉)의 산야를 보고 기뻐하는 눈, 또는 반공(半空)에 직선 곡선 여러 가지 선으로 그려진 산의 형용과 삼림의 윤곽을 보고 기뻐하는 눈, 우리 조선(祖先)이 남겨 준 위대하고 미려한 미술품을 보고 기뻐하는 눈- 그러 한 눈을 주려 함이다. 자연은 인생에게 세 가지 세계를 주 었다. 진(眞)의 세계, 선(善)의 세계, 미(美)의 세계, 진의 세 계의 잿간은 과학으로 찾을 것, 선의 세계의 재산은 아름다 운 사화와 가정과 개인의 품성에서 찾을 것, 그리하고, 미의 세계는 예술로 찾을 것이다. 낡은 예술로 찾을 것이다. 낡은 조선이 빈약하고 비추(鄙醜)한 것은, 이 마땅히 찾을 재산이 찾지 아니하였음이니, 우리가 건설할 새 조선은 찾을 수 있 는 대로 이것을 찾아서 부강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조선이 되어야 한다.

성재의 시험관도 이 의미로 뜻이 깊고 자기의 화필도 이 의미로 뜻이 깊다...... 성순은 이러한 만의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

'음악을 배우는 되도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기가 혼자서 즐기려고 배우는 것, 둘째는 대음악가가 되어서 세 계적 명성을 박(搏)하려 하는 것이니, 이 두가지가 다 좋다.

그러나, 셋째가 가장 좋으니, 그것은 즉 조선인에게 미묘한 음향의 세계에 들어가 는 귀를 줄 양으로 배움이다.' 하고 그 말 끝에,

"성순이는 셋 중에 어느것을 취하셔요."

할 때에 성순은,

"세째' 하고 웃은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또 민이 자기에게 이러한 말을 하였던 것도 기억한 다.

'금일의 사회는 남자와 여자의 공통한 소유물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그 천품의 특장을 따라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 여 우리가 이상하는 바 사회를 실현하여야 된다. 여자에게 남자 동양(同樣)의 교육을 해방하고, 직업을 해방하고......

물론 인격의 자유와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대세다.

더구나 남이 수백년 간에 이루어 놓은 문명을 수십년 간에 이루려 하는 금일의 조선인, 조선인은 더욱 남녀의 협동한 육력(戮力)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조선 여자도 주먹을 불끈 쥐고 일대 분발을 할 필요가 있고 의무가 있다.' 고 한것과, 그 때 성순은 감격에 못이겨,

"저도 새 조선을 위하여서 무엇을, 무엇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게 그러한 능력이 있을까요?"

할 때에 민은 소리를 높여서,

"하여 본 뒤에야 능력의 유뮤를 알지요. 하여 본 뒤에야 성 공을 하였으면 능력이 있었던 것이요, 실패를 하였으면 능 력이 없었던 것임을 알지요. 이러한 진리를 알았다면 조선 에도 퍽 많이 사업을 이룬 사람이 났을 것이외다. 제 능력 을 보아야지 하는 말을 얼른 듣기에 매우 영리한 듯하지마 는 기실은 자기를 망케 하고 사회를 망케 하는 말이지요.

우리는 소야외다. 소아는 제 능력을 모르고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쳐들어 보려 하고, 깨뜨려 보려 하지요. 그러 니?, 물론 실패도 많지요. 그렇지마는 실패도 많이 해야지 요. 많은 실패 중에, 여러 실패하는 사람 중에, 그 중에야 설마 성공도 있고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고 빙그세 웃는 것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