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42: 3

"성순씨!"

하고 뒤에서 부르는 남자의 소리는 떨렸다.

성순은 깜짝 놀라는 듯이 우뚝 서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민이었다. 그러나 성순은 인사도 하려고 아니 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성순씨! 저는 아까부터 대문 밖에 서서 나오시기를 기다렸 읍니다. 혹 크리스마스에나 아니 가시는가 하고...... 그러나 성순씨께서 나오시는 것을 뵈올 때에는 말을 할까말까 하고 오래 주저하엿읍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왔읍니다."

하고 한 걸음 가까이 온다.

성순은 고개를 들어 달빛에 비치인 민의 해쓱한 얼굴을 보 았다. 그리하는 성순의 얼굴도 역시 헤쓱하였다.

성순은,

"왜 그동안 한번도 아니 오셨어요?"

"제가 오기를 바라셨읍니까? 올까 하여 무섭지 아니하였읍 니까? 여기서 뵈옵는 것도 무서워하지 아니합니까?"

민의 어조는 자못 격(檄)하였다. 분노한 듯까지 하였다. 성 순은 그 말을 들을 때에 몸이 오싹하였따. 그러나, 도리어 대담하게 말할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셔요? 제가 그러리라고 생각하셔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읍니까? 성재형께서 편 지가 왔읍니다. 성순씨와 변군과의 약혼은 확정되었다고. 그 러니까 너는 내 집에 오지 말고, 성순씨와 교제도 말아 달 라고...... 그런데도 댁에 찾아갈 수가 있겠읍니까? 좋습니다.

축하합니다. 변 부인이지요?근일에 결혼식을 하시고 동경으 로 신혼 여행을 가신다지요? 그것을 축하할 양으로 추운데 여기서 기다렸읍니다. 댁에는 갈 수가 없으니까요."

"왜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드리리까?"

"제 뜻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흥, 누구나 그런 말을 하는 법입니다. 성순씨가 만일 남의 위력에 못 이기어서 그러한 작정을 한 것이라면 성순이는 못난이거나 어린애지요......"

"네- 못난이야요."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못난입니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 하십니까?"

"그러면 제가 이 경우에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꼭 한 가지밖에 없지요. 즉 자기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라서 행한다- 그것뿐이지요. 성순씨는 성순씨의 성 순이지요. 어머님의 성순입니까, 오라버니의 성순입니까?"

"저는 저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행할 힘이 없어요."

민은 물끄러미 성순을 모로 보았다. 과연 성순의 말은 진 리라 하겠다.

"그렇게 행할 힘은 없다 하더라도 행하였으면 좋겠다는 요 구는 있읍니까?"

"네."

"진정 그렇습니까? 될 수만 있으면 나는 나대로 내 이성을 따라서 행하겠다 하는 요구가 있읍니까? 될 수만 있다면 아 무의 속박도 견제도 받지 아니하고 내 인격의 권위와 자유 를 어디까지든지 발휘하였으면 하는 요구는 있읍니?. 과연 그렇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겠읍니까?"

"가능하지요. 그러나, 평화의 수단으로는 아니 되지요. 오 직 전쟁이라는 방법으로야만 되지요."

"전쟁!"

"암, 전쟁이지요. 첫째 부모의 권력에 대하여, 둘재 사회 인습의 권력에 대하여 전쟁을 해야지요."

"그것이 옳겠읍니까?"

"전쟁이니까 이기면 옳고, 지면 죄지요."

"이길 수가 있겠읍니까?"

"전쟁이니까 내가 강하면 이기고 내가 약하면 지지요."

"제가 강하겠읍니까?"

"그거야 남이 압니까?"

"만일 지면 어찌 될까요?"

"항복하여 노예가 되든지, 쾌(快)하게 전사를 하든지-"

"일천만의 여성을 위하여 희생이 되든지-"

"선봉장이 되든지-"

양인은 자연히 마음이 솔깃하여짐과 알 수 없는 용기와 프 라이드를 깨달았다. 한참 침묵하다가 성순이가,

"싸워 보지요, 싸워 보지요."

"싸워 보서요?"

"네, 싸워 보지요. 저를 도와 주십시오."

양인은 굳게 악수하였다. 그리고 삼사 보의 거리를 두고 쓸쓸한 겨울밤의 서울 거리를 걸어 숭동 예배당으로 향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