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40: 1

서울의 겨울 달은 남산의 동단(東端)에서 올라 남산 마루를 지나, 남산의 서쪽으로 떨어진다. 백설과 청송으로 문화(墨 畵)와 같은 반문(斑紋)을 성(宬)한 남산을 떼어 놓고는 서울 의 동월을 말할 수가 없다.

이 의미로 보아 남산 수(壽)를 빌기에는 응용할 수 없이 되 었다 하더라도 남산은 역시 서울의 자랑이다. 남상과 북악 두 틈에 장구 모양으로 벌여 있는 서울은 북악에서 위압을 받고, 남산에서 자애를 받는다.

이 특징은 지금과 같은 동질에, 그 중에 월명야(月明夜)에 더욱 분명하다. 옥으로 깍아 세운 듯한 구배(勾配)가 급하고 끝이 뾰족한 북악이 심청한 겨울 하늘의 북두성(北斗星) 자 루를 찌르려 하는 모양과 그 끝이 하늘을 푹 찔러서 하늘에 새었던 찬바람을 쏟쳐다가 서울에 내려 솓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암만하여도 북악에 대하여서 일종의 외경과 공포와 위압을 받는다. 그러나 수구문 근방에서부터 원원히 복잡한 파상(波狀)을 정(呈)하며 올라가다가 국사당(國祠堂)의 뭉툭 한 꼭대기를 이루고 원원히 내려간 남산의 우미한 곡선은 우리에게 정다움을 준다.

그런지 아닌지 서울은 북악을 등에 지고 남산과 낯을 대하 여 울고 웃고 한다. 아마도 웃을 때에 남산을 대하면 같은 미소를 얻고, 울 때에 남산을 대하면 부드러운 위안을 얻는 모양이다. 과거 몇 천년 간에, 가깝게 잡고 오백여 년 간에 몇 천만의 생령이 남산을 보고 웃고 울고 하였는고. 그러나, 한하건대 과거의 남산은 아직도 큰 웃음과 큰 울음을 당하 여 보지 못하였다. 웃을 일도 한두 번은 없지도 아니하였고, 울 일도 한두 번은 없지도 아니하였다. 서울은 그것을 감각 할 줄을 몰랐었다. 음력 십 일월 중순 달이 바로 남산 마루 에 걸려서 서울을 내려다본다. 삼십 만의 인굴라 가진 큰 서울에는 등불이 반짝거리고 전차 소리와 인마의 왕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편에는 비록 늙고 쓰러져 가는, 다 썩어진 더럽고 초라한 왜옥(矮屋)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반공(半空)에 우뚝 솟은 번쩍하고 깨끗한 고 루가 있다. 수로 보아 그 더럽고 늙어 쓰려져 가는 버릴 운 명을 가진 많음이며, 새롭고 번쩍한 집도 수로 보아 적다 하더라도, 그 적음은 차차 많아 감, 마침내 온 서울을 덮고 야 말 운명을 가진 적음이다.

서울에는 확실히 생명이 있다. 북악의 바람이 아무리 차게 내려쏜다 하더라도 길과 지붕과 마당이 아무리 얼음 같은 눈으로 내려눌렸다 하더라도, 그 밑에는 봄철에 움돋고 잎 새 필 생명이 잇는 것과 같이, 서울에는 확실히 생명이 있 다. 아직 의식이 발동하지 아니하고, 감각과 이성의 맹아(萌 芽)가 모양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확실히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비록 그것이 아직 원시 동물 모양으로 머리도 없고, 사지도 없고, 물론 신경 계통도 없는 단세포에 불과하 다하더라고, 아직 호흡도 영양도 없는, 얼른 보기에 무생물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생명이 있기는 확실히 있다.

오늘밤 달빛에 비추인 서울은 비록 사해(死骸)의 서울이라 하더라도 장래 어느 날 밤에 이 갈은 달이 반드시 생명의 서울을 비칠 날이 있따고 누가 이것을 의심하랴. 하물며 부 정라햐? 아무도 이 생명을 부정하지 못한다!

아아, 누누(累累)한 사해! 사대문, 종로, 북악, 및 남산 어느 것이 사해가 아니랴. 백년 묵은 사해, 이백년 묵은 사해, 간 혹 일전에 죽은 사해, 온통 사해다. 지금 이 달빛에 가로로 다니는 것도 사해, 혹 실내에 앉았는 것, 누웠는 것, 떠드는 것, 어느것이 사해가 아니랴? 소리면 귀추(鬼?), 빛이면 귀 화(鬼火), 무엇이 도약(跳躍)한다면 망량(??)의 도약, 그러나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묵은 사해와 새로운 공기아 광선으로 생장할 것 이다. 묵은 사체는 사해, 그 물건으로는 무용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생명적으로 분해한 화학적 원소는 넉넉히 신생명의 영양될 수가 있다. 될 수가 있을뿐더러 그것은 영양으로 하 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리고 공기와 광선은 무한하다. 암 만이라도 자유로 취할 수가 있다. 지구에 생물이 생식할 수 있는 한에는 공기의 부족을 탄할 수가 없을 것이요, 태양이 그열과 광(光)의 생명을 보전하는 한에서는 광선의 부족을 탓할 리가 없다. 서울의 생명은 생장하지 아니치 못할 운명 을 가졌다. 그런데, 서울에는 생명이 있다. 서울을 보고 우 는 자는 자기의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울? 낡은 주검 위에 새호 설 새 서울? 제군은 북악의 열풍 속에, 남산의 월광 속에 탄생 축하의 기쁜 곡조를 알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