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4: 1

성순은 성재에게는 없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는 그 오빠의 동생 중에서 가장 그 오빠의 사랑을 받았고 또 가장 그 오 빠를 사랑하였다. 성재의 동생되는 성훈만 추축하여 늙은 부모와 성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에, 성순은 발명에 열중 하는 장형(長兄)과 부랑한 차형(次兄)을 대신하여 곧잘 부모 를 위로하며 또 성재에게도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

가족 중에 성재의 이상을 잘 이해하여 만강(滿腔)의 동정을 성재에게 주는 이는 오직 성순뿐이었다. 성재가 동경서 고 등 공업 학교를 마치고 경성 다동(茶洞) 본집에 돌아왔을 때 에는 성순은 아직도 보통학교 삼년생 되는 십 이 세되는 계 집애였다. 성재가 발명의 뜻을 품고 천신 만고로, 불완전 하게나마 실험실을 꾸미고 들어앉음으로부터 아무도 이 실험 실에 들어오기를 허하지 아니하되, 오직 성순은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는 특권을 가졌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장난하 다가 두어 번 쫓겨난 일은 있으되, 성순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실험실에 들어올 때마다 성재는 만사 제지하고 웃 는 낯으로 맞아서 한번 안아 주며,

"가만히 여기 앉아서 구경해라."

하였다.

칠 년 동안 꼭 이 모양으로 하여 오다가 금년 봄엔 성순이 가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게 되매 범절은 그의 손에 다 맡기게 되어, 회계에 관한 사무, 서신 왕복에 관한 사무까지도 다 맡게 되었다. 성순은 영리한 처자요, 그 중에 도 그 오빠의 성미를 잘 안다. 그러므로 성순이가 한 일에 는 대개 다 만족한 뜻을 보이고 무슨 일이나 성순에게 부탁 하면 안심이 된다. 성순이가 아직 졸업하기 전에 성훈에게 무슨 일을 부탁한 적도 있었으나 대판 약포(大阪藥哺)에 보 내는 환전 백 원을 훔쳐 쓴 뒤로는 일체 성훈에게 부탁하기 를 그치고, 자기가 몸소 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반드시 성 순에게 부탁하였다.

성순도 성재를 위하여 노고하기를 싫어하지 아니한다. 다 른 사람이 보기에는 주야로 성재밖에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 같이, 매사에 '동경 오빠'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성재는 성순에게 한 약속을 이행치 아니하였다. 성 순이가 보통 학교에 다닐 적부터 방학에 돌아와서는,

"성순아, 제가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거든 동경에 보내 줄 께."

하였고, 성순도 동무더러

"나는 고등 학교 졸업하면 동경 가."

하고 자랑하였다.

"동경 가면 무슨 공부할래?"

하고 성재가 물으면,

"나도 오빠와 같이 고등 공업 학교에 가지."

하고는 여러 사람을 웃겼다. 성재도 주의상 여자 교육을 중히 여기며, 성순을 사랑하며, 또 성순의 재질을 믿는 고로 기어이 동경 유학을 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삼사 년 전부터 혹 부모를 대하여 성순의 유학게 관한 의논도 하였고, 성순 도 졸업하기 전전해부터 부모께 졸랐다. 그러나, 부모는 여 자가 글을 그리 많이 배우면 무엇하느냐 하는 것과, 성재도 모처럼 유학을 시켰더니 그다지 시원한 결과를 보지 못한 것과, 또 성재가 졸업 귀국한 후로 무엇인지 모르는 사업에 재산의 대부분을 없이한 것을 생각하여 농담 겸,

"졸업하거든 시집이나 가지 공부는 무슨 공부─"

하고 거절하였고, 그러면 성순은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며,

"싫어요, 나 시집 안 가요."

하고 빽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성재는 성순의 머리를 쓸어 주며,

"걱정말아라. 내가 유학시켜 주지."

하여 지금토록 성순에게 안심을 주어 왔다. 그러나, 연해 하여 온 실패에 금년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성순을 유학시킬 자력이 없이 되었다.

언젠가 한번 실험실에서 네 시 반 담화 시간에 형매(亨妹) 간에 이러한 담화가 교환된 일이 있었다(그 때에는 참 고통 이 되더라고 수일 후에 성재가 성순에게 회억담(回憶談)을 하였다).

"얘, 이제는 졸업을 하였으니까 동경 가고 싶은 마음이 있 겠구나?"

하는 성재의 말에 성순은 손가락을 한참 물어 뜯다가,

"가게 되면 가고 못 가게 되면 말지요."

"내가 이렇게 실패만 하여서, 너를 유학시킬 자격이 없구 나."

하고 성재는 성순의 낯빛을 보았다. 거기는 분명히 실망의 비애가 드러났으며, 이것을 보는 성재의 심정은 참 아팠다.

"일 년만 참아라. 설마 금년 안에야 성공을 못하랴. 명년 사월 학기에는 기어이 동경에 보내 주마."

하였다. 그 후의 실험의 결과를 보건대 명년이란 말도 신 용은 아니 되지마는 억지로 오빠의 말을 믿고 지금 까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