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는 더욱 위엄 잇는 목소리로,
"민군과는 혼인할 수 없다.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만, 첫째 민군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
"응, 아내까지 잇는 것이 남의 딸을......"
"벌써 이혼한다고 아니 돌아본 지가 한 오륙 년 되지마는 아직도 그 아내되는 사람은 아니 간다고 그런다더라...... 그 런데 너는 그러한 사람의 첩으로 갈래?"
성순은 이 말을 들을 때 놀랐다. 민이 아내 잇는 사람인 줄은 몰랐었다. 자기는 아직도 민과 혼인하리라 하여 본 적 도 없지마는, 그래도 아내 있는 사람이란 말에는 얼마큼 경 억하고 실망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성재의 '못한다'하는 말이 유리하게도 들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금시에 민을 밉 게 볼 수도 없고 또 오빠의 말대로 변에게 시집가기를 허락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잠잠하였다. 성재는 이 눈치를 채고 얼룬,
"그러니까 민과 가까이할 생각은 아예 생념도 말고 어서 변군과 약혼을 해서 동경 유학이나 가게 하여라. 어서 그렇 게 작정해라."
"글쎄, 이 철없는 계집애야, 어떻허자고 그러한 사내와 친 한단 말이냐. 이제는 민인지 무엇인지 한 사람은 당초에 집 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테다. 그런 괘씸한 자식이 어디 있 단 말이냐?"
웬 일인지 모르지만, 성순은 그날 밤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자리 속에서 울었다.
이로부터 성순은 꿈같이 지내었다. 민은 한번도 오지 아니 하였다. 변만 격일하여 놀러 왔으나 성순은 될 수 있는 대 로 그와 상대하기를 피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약혼에 대한 반대도 하지 아니하므로 다른 사람들은 이미 결정된 줄로만 믿고 혼인할 절차를 의논하였다. 성재는 해상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정월이 되거든 곧 혼례를 행하여도 좋다고 주장하였다. 이 말에 물론 변은 대찬성이다. 변은 결 코 진정으로 성순의 유학을 바라지 아니한다. 변은 여자가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변의 부부관은 이러하다.
처(妻)란 용모가 미려하고 행지(行止)가 단아하며 성질이 온순하여 부(夫)의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며, 부를 위하여서 만 의의가 있는 것이니 부에게서 떼어 놓으면 존재의 의의 를 잃어 버리는 줄 안다. 변은 아마 한번도 여성을 독립한 존재로 생각하여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기실 변은 이렇게 명확한 부부관을 가진 것도 아니라, 그의 의식 중에 희미하 게 있는 생각을 글로 써 놓으면 이러하단 말이다.
그러므로 변과 민과의 부부관에는 현수(懸殊)한 차이가 있 다. 민은 어디까지든지 여성의 인경의 권위와 자유를 인정 하여, 부부를 완전하 양개체(兩個體)의 완전한 결합으로 생 각하므로, 부부 관계는 완전한 대등의 관계요, 독립국과 독 깁국 간의 관계로되, 변은 처를 부(夫)의 여러 가지 소유물 (재산, 명예, 지식, 양복, 시계 등) 중의 중요한 하나로 생각 하므로, 부부의 관계는 주정의 관계요, 종주극과 속국과의 관계라. 그러므로 변은 모친과 성재의 허락을 존중하되 민 은 도리어 그것을 안중에 우지 아니하고 오직 성순의 허락 을 중히 여긴다. 이제 만일 모친과 성재는 성순을 변에게 허락하고, 성순은 자기를 민에게 허락하였다 하면, 이에 성 순의 소유권 문제에 관하여 대소송이 일어날 것이다. 성순 은 모친과 오빠의 것이냐, 도는 성순 자신의 것이냐 하는 것이 그 쟁점이 될지니, 법정의 좌우에 늘어 앉은 변호사 제씨와 방청인 제씨는 응당 각각 자기의 의견을 따라서, 흑 좌, 흑 우 할 것이다. 다만 흥미를 감쇄하는 것은 이 사건의 원피(原皮) 양방이 각각 자기 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음 이니, 성재도 성순은 확실히 장형(長兄)되고 호주되는 자기 의 소유물이라 하는 판단이 잇는 것이 아니요, 성순도 나는 오직 내 소유물이다 하는 판단이 분명치 못한 것이다. 그러 므로 이 사건은 분명치 못한 쟁점을 가지고 감정가 인습과 방편과 고집과 임시 임시의 단편적 생각을 가지고 진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