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38: 2

"글쎄, 어린애가 시집이 무슨 시집이야요. 좀더 공부할랍니 다."

"공부는 무슨 공부를 더 한단 말이냐? 고등 보통학교나 졸 업하였으면 그만이지. 이제 공부를 더 하면 무엇을 하니?

사내들 같으면 몰라도...... 나, 저, 커다란 계집애들이 공부 합네 하고 돌아다니는 꼴을 정보기 싫더라. 우리는 보통 학 교 구경도 못 했지마는......"

"그 때와 지금과 같읍니까?"

하고 성순은 좀 흥분하였다.

"같지 않구! 지금이라도 계집애가 사내는 못되지"

"미련하던 것이 지혜롭게는 됩지요."

"응, 그래서 나는 미련하고 너는 지혜롭구나."

"옛날은─ 어머니의 시대에는 어머니도 지혜로왔지요."

"지금은 너만 지혜롭고?"

"어머니보다는 지혜롭지마는 남들보다는 미련하지요. 그러 니까 더 공부를 해야 된단 말이올시다."

"그게 어미에게 하는 말버릇이냐? 그게 학교에서 배운 말 버릇이냐?"

하면서도 모친은 성은 내지 아니한다.

모친은 성순의 이론의 정부(正否)를 판단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성순이가 자기를 항거하려 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이론으로 성순을 당하지 못할 줄을 알 때에 친권이라는 성 루(城壘)에 거(據)하여 위협을 함이다. 성순은 최후의 피난 처에 도입(導入)한 모친을 더 추구함이 무용한 줄을 알므로 잠잠하였다. 그러나, 모친은 성순의 침묵을 승(乘)하여 다시 기운을 얻어 공세를 취한다.

"그런 철없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어서 내나 네 오라비 하 나는 대로 해라. 네게 해롭게 하랴?"

이때까지 모년의 문답을 우두커니 듣고 앉았던 성재는 성 순이가 결코 경적(輕敵)이 아닌 줄을 깨달았다. 성순은 벌써 어린애가 아니다. 간단한 명령이나, 감언이나, 위협이 그 효 (?)를 주(奏)치 못할 줄을 알았다. 이지가 눈을 뜨려는 사람 에게는 이지 이외에 그를 설복시킬 것도 없음을 안다. 그래 서,

"공부하는 것이 좋지마는 우리 가세가 허(許)하느냐? 변군 도 해상(解喪)하기까지 동경에 유학을 시켜도 좋다 하니 그 렇게 되면 작히나 좋으나."

그러나, 이것은 궤변이다. 성순이가 '공부하겠어요'하고 핑 계로 한 말은 그가 약혼을 거절하는 유일한 이유로 여기고 반박하려는 논리적 유희에 불과하다. 성순은 이 말에는 대 답지 아니하고 잠자코 치마고름만 씹었다. 약 오분간 세 사 람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고 가만히 앉았었다. 성재는 불가 불 본 문제를 끌어내게 되었다.

"성순아!"

"네!"

"나는 네가 애 이 약혼을 싫어하는지를 안다. 너는 내가 모 르거니 하지마는 나는 벌써 다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아직도 경험이 없어서 잘못 생각한 것이니까, 어서 단념하 고 내 말대로 하여라."

하고 빙그레 웃는 성재의 얼굴을 슬쩍 보고 성순은 얼굴을 붉혔다. 모친은 웬 까닭인지를 모르고 눈이 둥그래졌다. 성 순은 오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대강 알아 차렸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잠잠할 수는 없었다.

"무엇을 알으셔요?"

"내가 모르는 줄 아니?"

"무엇 말씀이야요?"

"네가 네 일기를 다 보았다...... 그만하면 알지."

"............"

"그러나, 그것은 되지 못할 일이다. 오늘 급히 약혼을 한 것도 그것이 한 원인이다. 하니까 이제부터는 너도 변군의 아내인 줄로 알고 민군과 가까이 교제도 말아라."

모친은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무어 어째! 날마다 민이 놀러 오는 것 같더니, 어지 되었 어? 응, 이 철없는 계집애야. 글쎄, 그런 한푼 없는 사람한 테 시집을 가면 무엇을 먹고 살 양으로, 아니, 철없는 계집 애!"

성순은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또 반감도 생겨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누가 그이에게로 시집을 간답니까?"

하였다. 성재는, (저 계집애가 얼마나한 결심이 있는가.) 하엿다.

그러나, 성순은 확실히 자기가 지금토록 상상하던 바와 같 은 '어린애'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