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삼 일을 지나서 성재의 병은 훨씬 덜했다. 오늘 아침에는 이불을 두르고 일어나 앉아서 자기의 손으로 고깃 국에 만 밥을 두어 보시기 먹고 부인이 깍아 주는 능금도 한 개 먹었다. 살퐁경이던 가정에는 일조의 기쁨이 흐르고, 평생 말이 없던 가족들 간에도 여러 가지 유쾌한 회화가 교 환되었다. 하루 한두 번씩 온 가족이 성재의 주위를 둘러싸 고 성재가 앓는 동안에 일어난 일을 옛말삼아 웃음 섞어 하 게 되었다. 성재도 여윈 얼굴에 웃음을 띠어 가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기도 하고, 간단하게 묻기도 하며, 대답도 하였 다. 성재의 집에는 마치 오랜 겨울이 지나가고 양춘(陽春)이 온 듯하였다.
그러나, 그 양춘 속에는 아직도 한 줄기 얼음이 있어서 까 딱하면 양춘 전체를 굳은 얼음으로 화(化)할 듯 하다. 성재 의 병이 완쾌하는 날에는 생활 문제도 일어날 것이요, 시험 관 문제도 일어날 것이요, 성재의 부인의 불평도 일어날 것 이다. 그러나 앞에 오는 불평이야 있든지 없든지 죽어 가던 사람이 소생하여 온 기쁨이야 부정할 수가 있으랴.
이러한 기쁨 속에 더한 기쁨을 첨(添)할 양으로 변과 성순 과의 약혼이 맺어졌다.
모친과 성재와 변과 삼인이 성재의 방에 모여 앉아서 약 한 시간 만에 결말이 났다. 성재는 성순의 의향을 물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모친은 성순이가 결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추정적 보증에 병여(病餘)의 성재는 심하게 반대도 아니 하였다. 그리고 만일 성순이가 반대하거든 오 빠인 자기의 권위로 족히 수무(綏撫)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날 저녁에 성재는 모친의 면전에서 성순을 불러 약혼이 되었다는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성순의 태도는 예기하였던 것보다는 강하였다.
"성순아!"
"네─"
할 때에는 성재는 물론이어니와 모친도 성순의 대답을 많 이 염려하였고, 지금까지 성순은 자기의 소유물─ 적어도 자기네의 마음대로 순종하는 자로만 알았던 것이 '네'라는 성순의 대답이 분명하게 실내에 울릴 적에 성순도 역시 독 립한 일 개인인 듯한 위엄을 느꼈다. 그래서 성재도 잠간 양미간을 찌푸리고 머뭇머뭇하다가 마침내 다시,
"성순아!"
하고 불렀다.
"네."
하는 성순도 성재의 안ㅅ개을 주의하여 보게 되었다.
"오늘 약혹을 하였다. 먼저 네게 물어 보아야 옳을 것이지 마는, 아마 네 뜻도 어머니와 내 뜻과 다름이 없을 줄 알고, 네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작정하였다. 물론 네게도 반대는 없을 터이지?"
(이 말은 용하게 성재의 사정을 발표한 것이였다. 그는 성 순에게도 독립한 인격을 인정하여야 옳은 줄을 안다. 알뿐 더러 남을 향하여 말까지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아니 되는 이 인권이라는 새 사상은 가장 진보하였다 는 성재에게까지도 아직 실행할 힘을 줄이만큼 깊이 침투하 지를 못하였다.) 성순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성재의 얼굴만 물끄러미 보았다. 성순의 대답 없음을 보고 모친은,
"반대가 무슨 반대냐? 하나나 부족한 것이 있어야지. 변서 방으로 말하면 양반이것다, 부자것다, 사람이 잘났겄다, 그 뿐 아니라 여태까지 그의 신세를 우리가 얼마나 졌니? 아무 리 생각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부족한 데가 있어야지."
그러나, 모친이 완전한 요소로 꼽는 '양반' '부자' '여태까지 진 신세'는 성순에게는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엿다. 그뿐더 러 자기를 보은의 한 선물로 비기는 것이 도리어 불쾌하엿 다. 또 모친과 성재의 마음에 적당하니까 필연적으로 자기 의 마음에도 적당하리라는 논리도 승인할 수가 없었다. 종 로의 인경 소리를 듣고 난 성재보다는 시계의 치는 소리를 듣고 난 성순의 편이 얼마큼 더욱 신사상을 동화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인경 소리의 여향(餘響)한 성순은 분명히 성재와 모친의 면전에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할 용기도 없어 서 다만,
"저는 아직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하였다.
"아직이라니? 계집애가 이십 살이 가까워 가는데 아직이 다 무엇이냐? 남 같으면 벌써 자식을 둘이나 낳았겠다......"
하는 모친의 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