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의 병은 조금 덜었다. 밤에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지 마는 아침에는 눈을 뜨기도 하며, 분명치 못한 말로 이야기 를 하였다. 가족들은 얼마큼 수미(愁眉)를 열었고 날마다 오 던 백의사도 마음을 놓았다.
눈이 걷고 볕이 잘 드는 날, 하루는 변이 성재의 물병을 왔다가 성순의 나간 틈을 타서 모친더러,
"벌서 말씀을 드리자 드리자 하면서, 못 드렸읍니다. 아직 영감 상사(喪事) 나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말씀 을 여쭙기도 어떠합니다마는, 따님과 저와 혼인을 하였으면 어떻겠읍니까? 성례는 해상(解喪) 후에 하더라도......"
"아직 장가를 아니 드셨던가요?"
"작년 가을에 상처를 하였읍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성재형 께도 말씀을 드리고자 하면서도......"
"내야 알겠어요? 이제야 영감도 아니 계시니까 저애가 알 지요."
하고 눈 감고 누운 성재를 본다.
"네. 성재형께도 말씀을 하겠읍니다마는 어머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여쭈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 르겠읍니다마는, 그리되면 저도 아버지께 아무렇게 떼를 써 서라도 성재형의 실험을 계속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 같 고......"
하다가 아니할 말을 할 것을 후회하는 듯이 말을 끊었다.
모친도 돈으로 도와 주겠다는 말이 마치 자기를 낮추보는 듯하여 불쾌한 마음도 있지마는, 변은 본래부터 좋아하는 청년이요, 또 자기의 아들이 일생이 잊지 못하는 실험을 계 속케 하여 준다는 말도 노상 싫지는 아니하였다. 그래서,
"성재가 일어나거든 말씀을 해 보구려."
"그러면 어머님 생각에는?"
"성재만 좋다구만 하면 내야......"
"그러면 어머님은 이의는 없으십니다그려."
모친은 이의라는 말의 뜻을 모르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 나 그 얼굴을 보건대 거절하려는 생각도 없었듯하였다. 전 같이 부자로 지낼 때에는 이렇게 되고 보니 딸을 시집 보낼 걱정도 꽤 많았다. 가난한 집에는 주기 싫고, 그렇다고 부자 는 자기와 같이 빈약한 자의 딸을 데려갈 것 같지도 아니하 였다. 모친은 그 부모의 위광과 재산으로만 자녀의 행복된 혼인이 가능한 줄로 믿는다.
변은 상처한 후부터(정직하게 말하면 상처하기 전부터 후 처의 후보를 골랐다) 여러 처녀를 많이 후보로 세웠던 중에 성순이가 가장 그의 마음에 들었었다. 그러므로 성재의 사 업이나 인격에는 그다지 감심하지 아니하면서도 자주 성재 의 집에 놀러 갔다. 성재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성순의 얼 굴을 보러 감이었다.
그러나, 변은 자기의 심중을 말이나 안색에 발표하기를 부 끄러워하였다. 그래서 잇는 대로 말하고 자유로 자기의 감 정을 발표하는 민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를 점잖지 못하다 하 여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민이 자기의 강적인 줄은 알며, 또 성순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는 도저히 적수가 아닌 줄을 알므로 그는 모친이나 성재에게 육박하여 간접으로 성순을 점령하여 하였다. 이것은 관습상 도리어 정면 공격이요, 겸 하여 정정 당당한 일일 것이다. 성재 집의 파산은 그의 성 공의 세일의 기회였었고 성재의 중병은 제이의 기회였었다.
그는 이것이 천재 불우의 호기회인 줄을 알 뿐더러, 근일 민과 성순과의 친근이 막대한 위험을 예고하는 듯하여 성재 의 완쾌를 기다릴 새도 없이 그의 모친의 의향을 알아보려 한 것이다. 그러다가 모친에게 반대의 의향이 없음을 알매, 그는 팔분의 의향을 확신하여 희열을 금하지 못하였다.
변은 결코 악의 있는 청년이 아니었고, 차라리 선량한 청 년이었다. 동경 유학시에 현금 조선의 사상과 풍습과 반대 되는 여러 가지 사상을 많이 배웠지마는 그는 이 양자간에 무슨 모순이나 부조화가 있는 줄로 생각지도 아니하고, 따 라서 구습을 깨뜨리고 신사상을 수입한다든지, 신사상을 배 척하고 구사상을 묵수(墨守)한다든지, 또는 신구를 조화한다 든지 하려는 생각도 없고, 또 자기가 특별히 한 가지 이상 을 세우고 전력을 다하여 여러 가지 곤란과 싸우며 그것을 실행하여야 할 필요도 인(認)치 아니한다. 그는 진실로 매약 과 같이 무해 무독한 사람이요 세상이 칭찬할 만한 건전한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