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32: 4

병인은 성순의 손을 잡으며,

"얘, 성순아, 시험관, 시험관!"

한다.

"시험관은 해서 무엇해요?"

"시험관, 시험관! 이것을 보아라! 여기 백색 침전이 생겼고 나! 되었다, 되었다."

하고 빙그세 웃는다.

그 웃는 것을 보고 성순은 눈물이 흐르고 머리끝이 쭈뼛쭈 뼛 하늘로 오르는 듯하였다.

"오빠, 어서 나아서 성공하십시오!"

하고 병인을 꼭 쥐었다.

"시험관, 시험관! 주정등(酒精燈)에 불을 켜라!"

"병이 나으신 다음에!"

"시험관, 시험관!"

성순은 가만가만히 병인의 가슴을 흔들면서,

"오바, 정신을 차리십시오!"

하는 그 목소리는 떨렸다.

성재는 한번 더 소리 높이,

"시험관, 시험관!"

하고 경련을 일으키면서 다시 잠이 든다.

이 소리에 놀라서 모친이 뛰어나오면서,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니?"

"네, 시험관을 찾아요."

"아이구, 앓으면서도 마음이 거기만 있구나!"

하고 흑흑 느낀다.

안방에서 울다 나온 모양이다. 병인도 또 한번 팔을 내어 두르며,

"시험관, 시험관!"

한다 모친은 벌떡 일어나서 탁자 위에 세워 놓은 시험관을 집어다가,

"성재야, 시험관 여기 있다!"

하고 병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병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것을 받아 들고 상시(常時)에 하 던 모양으로 서너 번 돌리더니 힘없이 이불 위에 떨어뜨린 다.

그리고는 다시 가만히 잔다.

모친은 물끄러미 성재의 낯을 보면서,

"글쎄, 이게 웬 일이냐? 왜 너까지 병이 드느냐."

하고 두 손으로 방바닥을 한번 때리고, 벌떡 일어나 안방 으로 들어간다.

성순은 혼자서 병인의 손을 주무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 하였다. 그것은 성재의 손바닥에 굳은 못이 박힘이었다. 성 순은 깜짝 놀라 병인의 손을 쳐들어 불빛에 자세히 검사하 였다. 두 손바닥에는 온통 굳은 못이 박히고 껍질이 여기저 기 벗겨졌으며, 오래 씻지 아니한 모양으로 거멓게 때가 묻 었다. 성순은 무서운 듯이 그 손을 놓고 성재의 얼굴을 보 았다. 성재가 일개월 이상이나 매일 외출한 것이 알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여서 그렇게 되었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실로 성재는 오만하다 할이 만큼 자존심이 많았다. 그래 서 그는 일찍 남에게 무슨 은혜를 청구하여 본 적이 없었 다. 몇 달 전, 함사과와 이(李)변호사에게 갔던 것은 부모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매, 죽기보다 싫은 굴욕과 고통을 무릎쓰고 한 것이다. 그의 재산이 전부 없어지매 그는 자기 의 손으로 일가를 부지하며, 겸하여 실험 비용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이 나가서 노동자로 변장하 고 각 방면에 노동할 것을 구하였다. 그는 인력거도 끌어 보고, 짐구루마도 끌어보고, 정거장에서 하물 올리고 내리는 노동자도 되어 보다가, 이주일 전부터 동대문 도르 개축 공 부가 되어 괭이로 언땅을 파기에 몸을 피곤케 하였다. 그리 하여 원래 육체적 노동에 경험이 없던 몸이 연일 과로에 심 신이 피로하고, 겸하여 과도한 심로에 신경이 과민하게 되 어 불면증의 침노한 바 되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돌아오는 길에 몸이 식어 감기가 되고, 그 후에는 더 무리한 노동에 감기가 더욱 격력하게 되이 마 침내 급성의 폐렴을 일으킨 것이다.

일터에서 가까스로 왕십리 주막까지 기어들어와 거기서 옷 을 갈아입고 인력거를 불러 타고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 비밀은 아는 이가 없다. 손에 박힌 굳은 못 이 영원히 그 기념이 될 것이다.

성순은 오빠의 손을 보고 그의 지나간 일개월 간의 한 일 을 여러 가지고 상상해 보매 눈물이 아니 흐를 수가 없었 다. 지금토록 성재의 자기에게 대한 태도로 그 이유가 알아 진 것 같고, 성재의 지금의 병 원인도 알아진 것 같았다. 성 순은 다시 일기를 당기어 이렇게 썼다.

'아아, 내 불쌍한 오빠! 만일 내게 힘만 있으면, 내 몸을 가 루로 만들어서라도 오빠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해 드리련마 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