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31: 3

변이 왔다 간 뒤에 누가 보냈는지 모르게 쌀 한섬과 나무 한 바리가 왔다. 그것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이 댁으로 가져가라고 그래요."

할 뿐이요 누가 보내더라는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모친과 성순은 그것이 변의 소위인 줄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또 우육(牛肉)과 무우가 왔다. 이것도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다만 눈이 둥 글했을 뿐이였다. 전 같으면 그만 그것을 받고 고맙게 여길 리도 없건마는 현재의 처지에 있어서는 이 가족에게는 하늘 에서 내려온 것같이 고마웠다.

오후에 민이 와서 저녁때가 되도록 성순과 이야기를 하다 가 가소 석반(夕飯) 후에는 여전히 성순이 혼자서 성재의 머 리맡에 앉았었다. 모친은 안에 앉은 대로,

"정신 좀 차리니? 무엇을 좀 먹었니?"

하고 물을 따름이요, 병실에 들어오지는 아니하였다.

이리하여 성재의 중병이 제일일의 낮이 지나고 밤이 다다 랐다. 성순은 의사가 명하는 대로 때를 따라 큰 병의 약과 작은 병의 약을 번갈아 먹였다. 숟가락에 약을 떠서 손에 들고,

"오빠, 약 잡수세요."

하고 병인의 입을 벌릴 때에는 병인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 었다. 그러나 심히 반항은 아니 하므로 분량대로 약은 먹였 다. 성순은 빨래한 손수건으로 병인의 약물 묻은 입을 씻고 는 혼자 한숨을 쉬었다. 혹 가만히 병인의 머리도 짚어 주 고, 가끔 흘러내리는 이불도 치켜 덮어 주며, 혹 창 뚫어진 구멍으로 눈에 덮인 길거리를 내다보기도 하였다. 길 건너 반찬 가게는 여덟시가 되자마자 문을 잠그고 안에서는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성순은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실험상과, 그 위에 놓인 빈 시험관과 팔각목종과, 앓은 오ㅃ의 얼굴과를 번갈아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얼른 안에 뛰어 들어가 자기의 일기책 을 들고 나온다. 학교에서 일기를 장려하므로 부득이 형식 적으로 일기를 써 왔었거니와, 근래의 일개월 간의 일기에 는 생병 있는 기사가 꽤 많았다. 그 부친의 죽음과 오빠의 고민과 일가의 쇠퇴와 모친의 애통과 올케의 홍루(紅淚)와 이것이 다 그의 일기의 재료가 되었거니와 그 중에 제일 많 이 지면을 차지한 것은 민의 일과, 거기에 관하여 일어나는 자기의 정신적 변동과 고민이었다. 성순은 붓을 들어, '집 이월 오일 눈 한(寒).

종일 오빠의 병을 간호하였다. 그러나 차도는 없다. 오빠는 불쌍한 사람이다. 칠년 동안이나 목적을 위하여 애쓰다가 모두 실패하고 마침내 중병에 걸렸다. 병명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꽤 중병인 것 같다. 만일 오빠가 돌아가시 면...... 아니, 아니, 내가 오빠의 목적을 성취하게 해 드려야 하겠다.' 여기까지 써 올 때에 병인이 팔을 두르며 헛소리를 한다.

성순은 얼른 일기책을 감추고 병인의 머리에 손을 짚으며,

"오빠, 오빠!"

하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