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계획을 세운 뒤에도 성공할 듯하면서 실패한 것이 벌 써 두 번이나 되었다. 그러할 때마다 성재의 실망은 물론이 려니와 성순의 실망은 여간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다정한 여성으로 생겨나서 사랑하는 오직 하나인 오빠의 실망하여 가는 것을 보는 심정은 실망하는 당자보다도 더욱 간절하였 었다. 성재가 실험에 아주 실패하여 며칠 동안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밤에도, 불을 켜 놓은 대로 방안에서 왔다갔다 하여 괴로워 하는 양을 보고는 성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일도 흔히 있었다. 지난번 사월에 한 번 실패하였을 적에는 성재가 이렇게 실망이 되고 상기가 되었는지 자살이라도 할까 두려워, 성순은 잠시도 오빠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오빠의 침실에는 칼이나 끄나풀 같은 것이 떨어지지 아니하기를 주의하였다. 그러다가 이번 구월 부터 시작한 실험은 매우 경과가 좋았던지 그동안 성재는 대개 만족한 얼굴로 지내었다. 그래서 성순도 시름을 놓고 기쁘게 지내였다. 그러나, 오후 네 시 반에 실험실 문을 방 싯 열 때마다 성순의 가슴은 자연히 울렁울렁하였다. 오늘 실험 결과는 어떠한가, 과연 성공이 되었는가, 성공은 못 되 었더라도 기분(幾分)의 광명이나 얻었는가, 그렇지도 못하더 라고 실패나 아니 되었는가. 이런 근심을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성재가 웃으며 자기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양을 보고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오늘도 성재의 웃는 낯을 보고 마음을 푹 놓았다가 문득 그가 고개를 숙이며 한탄하는 것을 보고, 또 가슴이 쿵 하 고 내려앉은 것이다. 성재는 고개를 번쩍들어 가운없이 우 두커니 섰는 성순을 보고,
"의자 갖다 여기 앉아라."
성순은 시키는 대로 의자를 끌어다가 성재와 비스듬히 마 주 놓고 앉으면서,
"글쎄, 왜 오늘은 그렇게 기운이 없으셔요?"
하고 재치 묻는다.
"애, 성순아!"
"네?"
"내가 성공할 듯싶으냐."
"그럼요, 그만한 자신이 없으십니까?"
"자신이야 있지, 자신이 있기에 날마다 종일 시험관만 들여 다보고 앉았지."
"그러면 왜 그러셔요?"
"그런데 꼭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구나. 그해 오길 칠 년이나 해도 그냥 안 되는구나, 이번 계획도 처음에는 순순히 되어 오는 듯하더니 어제 오늘에 와서는 또 위태위 태하여지나 보다."
하고 길게 한숨을 쉰다.
성순의 몸에는 오싹 소름이 끼친다.
"응, 물론 성골할 테지."
하고 성재는 손으로 낯을 한번 만진 뒤에,
"그러나, 이제는 돈이 있어야 아니하니? 약품은 무엇으로 사고 주정은 무엇으로 사나."
"주정은 아직도 반 통 남았어요."
"반 통?"
"네, 지나간 사월에 부쳐온 것이 한 반통 남았어요."
"그러면 주정은 금년 일년, 명년 삼월까지는 걱정이 없겠 다. 그러면 약품만 한 이백 원어치 샀으면 명년 삼월까지는 이럭저럭 지내겠다. 그런데 돈이 좀 남았니?"
"한성 은행 저금 통장에 백 육십 원이 남았어요."
"백 육십 원?"
"네, 함사과(咸司果)한테 집 문서 잡히고 취해 온중에서 저 번에 약 부쳐 오고 책 사 오고......"
"백 육십 원이라."
하고 혼잣말로,
"그러면 걱정은 없다."
하고 얼굴에 화기가 돌며 벌떡 일어나서 약품 목록과 주문 서를 내어 연필로 무엇을 쓴다. 성순은 가만히 앉아서 성재 의 손과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어서 성공을 하였으면, 만일 명년 삼월까지에도 또 실패를 하면 어찌하나.) 이러한 생각이 희망과 공포와 한데 버물려서 성순의 흉중 으로 왕래한다. 그러나, 그 오빠가 그러첨 열성으로 자기의 초지를 관철하려고 애쓰는 것을 볼 때에 한껏 존경하는 마 음도 생기고 또한 한껏 불쌍한 듯한 생각도 난다. 이렇게 성재에게 동정하여 주는 점으로 보아서는 성순은 마치 성재 를 보호하여 주는 맏누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