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29: 1

십 이월을 잡은 어떤 눈이 몹시 오는 날, 성재는 인력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 많이 왕래하지 않는 계동 골목에 는 오직 성재의 타고 온 인력거 자리뿐이었다. 광명등에 여 기저기 불이 반짝반짝 켜질 때에 성재는 기운 없이 인력거 에서 내려서 좁고 낮은 대문을 들어서며,

"성순아!"

하고 불렀다.

이 소리에 성순이와 어멈은 깜짝 놀라 뛰어나왔다. 대개 성재의 목소리가 마치 중병인의 목소리와 같으므로, 성재는 성순에게 돈지갑을 내어 주며,

"자, 여기서 인력거 비용 일 원을 주고, 그리고 내 방에 자 리 좀 펴 다오. 아이구."

하며 행랑방 문고리에 매어달린다.

"에그, 동경서방님, 이데 웬 일이셔요?"

하고 어멈은 성재의 두 어깨를 붙들었다.

"어서, 어서, 성순아! 자리, 자리─"

하고 퍽 괴로운 듯이 고개를 바로 세우지 못하며 몸을 벌 벌 떤다.

모친은 안 대청에 서서 말없이 본다.

성재는 그날 밤부터 병상의 사람이 되었다. 누가 물어도 성재는 자기의 병의 원인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또 그동안 매일 어디를 갔는지도 말하지 아니하였다. 성재의 눈은 붉 게 되고 머리는 불덩어리같이 달았다. 모친과 성순은 번갈 아 병인을 간호하였다. 그러나 모친은 차마 그 참상을 못보 겠다 하여 흔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혼자 울었고, 어멈은 가끔 문 밖에 와서,

"아씨! 좀 어떠셔요?"

하고 성순에게 성재의 경과를 물었다. 성순은 자기가 아는 단순한 지식을 응용하여 여러 가지로 치료법을 시행하였다.

서양 수건에 물을 적셔 병인의 머리를 식히기도 하고, 실내 에 매어달았던 한난계로 체온도 검사하여 보았다. 그러나 화씨와 섭씨의 관계를 잘 모르는 성순은 화씨 한난계의 도 수가 섭씨 삼십 칠 도보다 얼마나 더한지를 모르고 다만 사 십 도 이상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성재의 팔을 잡아 맥박을 보려 할 때에 팔각목종이 선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맥박과 비교해 보아 자기보다 십여 차나 더 빠른 것을 발견하였따.

무엇인지 모르거니와 성재의 병은 성순이 보기에 심히 위중 한 듯하였다.

다음 날, 백(白)의사를 청하여 왔다. 성순과 모친이 앉고 성재가 우누니 좁은 방에는 입추의 여지도 없었으므로 백의 사가 병인을 진찰할 때에는 성순이 벽에 착 기대어 아무쪼 록 자리를 많이 아니 잡도록 하였따. 아직 날이 호리고 눈 이 날리지마는 여러 지붕의 설광에 실내는 밝아서 병인의 가슴이 자주 들먹거리는 것이며, 양 변두(邊頭)의 동백이 자 주 뛰는 것같이 보였다.

백의사는 양복 바지에 주름가는 것을 아끼는 듯이 두 손으 로 바지를 조금 치걷고 꿇어앉아서 병인의 이불을 젖히고 옷고름을 끄르고 청진기를 병인의 가슴에 대었다. 모친은 그 가슴을 보고,

"빼빼 말랐구나!"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성순은 풀풀 떨리는 청진기의 고무줄 과, 좌에서 우로, 상에서 하로 왔다갔다하는 백의 손과, 때 때로 움직이는 백의 눈썹과 눈자위를 보았다. 그러나 성재 는 정신을 차리는지 마는지, 눈을 감은 대로 가만히 잇다.

방안이 고요한데 병인의 숨소리와 아까 성순이가 틀어 놓은 팔각종 소리가 들릴 뿐이다.

백은 병인의 혀를 보려 하였으나 병인이 고개를 흔들어서 보지 못하고 붉게 된 눈만 겨우 벌려 보았다. 그리고 청진 기를 빼어 가방에 넣고 검온기를 병인의 액(腋)하에 끼운 뒤 에 한 걸음 물러나 앉으면서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한다.

모친은 백의 얼굴만 보다가 병명도 묻기 전에,

"언제나 낫겠소? 내 아들 어서 고쳐 주시오."

하고 말끝이 눈물에 묻혔다. 백은 웃으며,

"염려 말으십시오. 감기니까 며칠 지나면 낫겠지요."

"감기가, 무슨 감기가 갑자기 그렇지?"

"아무 염려 없읍니다."

하면서 검온기를 빼어 볼 때에 성순은 얼른 백(白)의 뒤에 돌아가서 어깨 너머로 검온기를 보았다. 수은과 사십 도 이 상인 줄은 알았다. 그리고,

"열이 높으시지요?"

하고 물었다.

"염려 없읍니다."

하고 약을 보낸다고 어멈을 데리고 백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