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그 오빠의 동무가 되던 성순은 근일에 그 오빠가 집에 붙어 있지 아니하므로 큰 적막을 깨달았다. 그뿐더러 전과 같이 정다운 말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물 어도 대답도 잘 하지 안했다.
성재는 마치 성난 사람 모양으로 항상 ㅇ러굴을 찌푸리고 잇었다. 한번은 늦게 돌아온 성재에게 저녁 상을 내다 주며 (성재는 별로 안방에를 들어가지 아니하고 집에 오면 행랑 방에 있었다),
"오늘은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할 때,
"아무데도 간 데 없다!"
하며 밥을 두어 숟가락 뜨고는 왈칵 밥상을 떠밀었다. 그 때에 성순은 밥상을 들고 나오면서 울었다. 그 후에도 한번 성재의 방문을 두드렸으나, 확실히 방안에서 왔다갔다 하면 서도 대답이 없었고, 또 한번은 '시끄럽다, 들어가거라!'하고 문고리를 건 적도 있었다. 그러할 때마다 성순은 혼자 울 뿐이다.
성재의 기분이 이러하게 되었으므로 모친도 다만 슬쩍 볼 뿐이요 성재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성순은 성 재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그 오빠를 불쌍히 여김보다도 자기를 불쌍히 여겨야 하였었다.
이리하여 오빠가 있을 때에는 오빠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 다가 오빠가 나간 뒤에는 얼른 오빠의 방에 뛰어 들어가서 오빠의 의자에 앉아 오빠의 책상에 얼굴을 대고 엉엉 울었 다. 성순의 생각에 오빠에게 버림이 되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할 때에는 흔히 민(閔)이 찾아왔다. 그러나 성순은 과도한 자기의 설움에 민이 오는 것도 그리 큰 사건 이 아니었었다. 그러나 친절히 하여 주는 민의 위로를 받을 때에는 얼마큼 기쁘지 아니치도 않아서 가끔 자기의 슬픔을 잊고 두 세 시간이나 담화에 취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 덟 시경에 오빠가 나가고 자기가 오빠의 방을 치우고 한참 앉았다가 팔각목종의 시침이 아홉을 가리킬 때가 되면 민이 기다려지게 되고, 오후 한 시나 두 시쯤 하여 문에서 민을 전송하고 나면 서운한 듯한, 적막한 듯한 생각도 나게 된다.
그래서 방에 들어와 앉았다가 다시 들창 밖으로 민의 돌아 간 방향을 바라보기도 하고, 혹은 민의 하던 이야기를 가만 히 생각도 하여 보고, 또는 그 이야기 중에 재미있던 구절 을 혼자서 반복도 하여 보게 되었다.
그래서 민이 왔다가 가면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잇는 민의 자리에 가만히 손도 대어 보고, 살짝 올라 앉아 보기 도 하였다. 일찍이 아니 그러던 것이 근래에는 혹 꿈에 민 이 보이는 수도 있고, 그러할 때마다 반갑게 민과 악수를 하면서 평상시보다 자유롭게 민과 여러 가지 회화도 하였 다.
이러하게 되니 성순은 오빠의 냉담함이 그다지 슬프지도 아니하고, 자기 가정의 현재의 비운은 결코 자기의 비운이 아니오, 자기에게는 특별히 광명 잇는 희망의 전도가 있는 듯하였다. 그는 일기에 이러한 말을 쓰게 되었다─ '...... 오늘 M이 오셨다. 전보다는 이십 분이나 늦게 오셨 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 웃는 낯이 어떻게나 좋은 지, 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전(全)씨가 함사과의 고소로 옥에 들어갔다가 정신병자인 것이 관명되어 일주일 만에 방 면되었다는 말을 하시고 진정으로 동정하는 빛을 보이셨다.
과연 M은 동정이 많은 어른이다. 나도 전씨의 불행을 생각 하고 눈물이 흘렀다......' '...... 오늘 아니 오셨다. 왜 아니 오시나. 나는 기다리다 못 하여 화를 내어서 <퍼피>를 때렸다. 왜 아니오시나...... 아 차, 웬 일일까? 내가 왜 이렇게 M을 보고 싶어하나. 어젯 저녁에는 M과 키스하는 꿈을 꾸었다. 웬 일인가? 왜 오늘 은 아니 오셨나? 내가 왜 이렇게 M을 보고 싶어하나?' '...... 언제 만나도 반가운 M이 오늘은 더욱 반가왔다. 오늘 은 그 <도토리>의 이유를 가르쳐 주시마 하더니 후일에, 후 일에...... 하고 그냥 두고 말았다. 대체 그 <도토리>에 무슨 뜻이 있는고?......' '......M이 왜 날마다 올까? 오빠를 보러 오는 것일까? 내가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일까? M이 날마다 오는 줄을 알면 오 빠께서 무어라고 아니 하실까? 무일! M이 아니 오면 나는 어쩌게! 오오, M! 내M! ! 좋은 글자다.' '......아이구머니 내 가슴에 왜 이다지 울렁울렁할까? 머리 가 왜 이렇게 아플까? 일기 쓰기도 싫다! M,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