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搬移)한 후 얼마 동안의 성재의 집은 아래와 같다─ 모친은 종일 자기의 방에 홀로 있어서 담배만 피우고 가끔 기침을 하였으며, 그 때에 가 보면 대개 눈물을 흘리고 앉 았었다. 그러나, 딸이나 며느리가 들어오면 얼른 눈물을 감 추고,
"빨래 다 하였느냐?"
하고 이러한 말을 물었따.
그런 줄을 아는 성순이와 성훈의 아내는 반드시 얼른 뛰어 나와서 눈물을 씻었다.
성순은 그 모친의 실신하여 함을 걱정하여 몇 번 위로하려 하였으나 정작 위로의 말을 하려면 성순의 눈에 눈물이 고 여 도리어 그 모친의 위로를 받았다.
"사람이란 굶어 죽는 법은 없느니라, 염려 말아라."
모친은 창가(唱歌)의 후렴 모양으로 이런 말을 하였다. 자 기가 무일물한 적빈에서 일어나 그만한 부명을 듣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매, 미상불 자기의 능력에 무슨 자신이 있는 모 양이나, 그러나 자기의 남편이 이미 없는 것을 생각하고, 자 기의 연령이 이미 쇠한 것을 생각할 때에 실망함도 없지 아 니하였다. 다만 육십 평생에 분투하여 오던 그 기개가 아직 도 남아서 지금이라도 자기의 손으로 능히 가도를 부흥할 수 있다고 자신하려 할 뿐이다.
성재가 날마다 아침에 나아가서 저녁에야 들어오는 것과, 그의 얼굴에 항상 우수가 있는 것을 볼 때에, 또는 성훈이 가 일주일이나 돌아오지 아니하여 그의 아내가 공규(空閨)에 서 혼자 우는 소리를 들을 때에, 아무리 장부다운 모친도 단상의 정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때에는 간다 온다 말없이 참서의 무덤을 찾아가서는 한바탕 실컷 울었다.
모친 자기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성훈의 아내도 할 일 이 없었다. 큰 집을 쓰고 부유한 살림을 할 때에는 무슨 일 이 그리 많은지, 바쁘기도 바이 없더니, 집이 작아지고 생활 이 구차하게 되매 손에 잡을 일도 없고 머리에 생각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다만 과거 일을 회상하고 슬퍼하 기만 위하여 사는 것 같았다. 그네는 형제에 시량(柴糧)이 없음을 알되, 또 그것을 걱정은 하되 어떻게 하여야 자기네 를 현재의 궁핍에서 구제할는지는 생각도 하지 아니하였다.
성순은 슬퍼하는 어머니와 낙심하여 하는 오빠를 보고 더 할 수 없는 간절한 동정을 일으키지마는 다만 그뿐이었고, 성훈의 아내는 다만 청춘의 공방이 슬펐을 뿐이요, 일가의 곤궁에는 별로 감각함이 없었다. 모친은 일가의 곤궁도 알 고, 그 곤궁을 벗어나야 할 줄도 알고, 벗어나려면 벗어날 듯한 자심도 잇는 듯하지마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책도 없고 정견도 없었다.
딸과 며느리가 자기의 운명을 보지 못하는 대신에 모친은 그것을 분명히 보기는 보았다. 그러나 현재의 운명을 벗어 나려는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다만 운명의 손에 자기 를 내어 맡기고, 한숨 쉬고, 눈물 흘리는데 이르러서는 세 사람이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네는 다만 과거를 회상 할 뿐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는데─ 할 줄은 아나 '어찌하면 한번 다시 그러한 미래를 현출하여 볼까?'하 는 생각은 하여 보지 못한다. 그뿐더러 그네에게는 그러한 생각을 할 자격이 없다. 대게 그네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으 니까.
오직 늙고 충실한 어멈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저녁에 늦게 자기까지 잠시도 쉴 큼 없이 은혜받은 주인의 집을 위 하여 힘을 썼다. 그러나 그의 힘은 유력하기에는 너무 약하 였다. 찬물에 걸레를 빨고, 물독에 언제든지 물을 채워 두 고, 마루를 닦고, 때를 찾아 장독 뚜껑을 열엇다 닫쳤다 하 고 나무 값이 비싼 것을 생각하여 나무를 절용하고, 양식이 떨어져 가는 것을 근심하여 자기가 먹는 밥의 분량을 줄였 다.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랴.
김참서는 자기가 무덤에 들어갈 때에 자기가 자기의 가정 에 주었던 기쁨과 희망과 활기와 활동을 온통 거둬 가지고 갔다. 다행히 집의 위치가 높고 남향이므로 성재의 서재로 된 전 행랑방을 제한 외에는 연일 호천기의 따뜻한 일광이 종일 비추었다. 그러나 그 일광을 향락할 만한 정신의 여유 를 가진 자는 오직 퍼피라는 고양이뿐이였다. 퍼피는 날마 다 마루에 누워 편안히 자다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