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23: 1

함사과의 집에는 내외에 등촉이 휘황하였고, 사랑에서는 어두운 후에 새로운 연락이 시작되엇따. 주식도 이제는 취 차포(醉且飽)하고 명창(名唱) 이 동백(李東伯)이가 장구 소리 에 맞춰 부채를 폈다 접었다, 한 걸음 들어섰다 나섰다 하 면서 춘향이 타령이 한참이다. 함사과는 여전히 아가 그 안 석에 기대어 한 팔로 강점(江點)이라는 기생을 안고 앉았고, 낮에는 소송건(訴訟件)으로 미참(未參)하였던 이변호사도 술 로 붉은 얼굴에 금안경을 번쩍거리며 무릎에 기댄 기생의 등을 어루만지고 앉았다.

'아이구 이게 웬 일이야'하는 춘향 모의 엄살을 고개를 흔 들어 가며 할 때에 일동은 '좋다─' '응, 그렇지'를 연발하며 무릎을 툭툭 친다. 그러면 광대는 더욱 익살을 부려가며 춘 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데를 가장 구슬프게 내려 엮는다.

슬픔이 그 극에 달하여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을 때에 일 동은 '좋다─' '얼씨구!'하고 소리를 내어 웃는다. 기생들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조그마한 손뼉을 딱딱 치며 기쁨을 못 이겨 하는 듯이 앉은 춤을 춘다.

아 때에 어떤 노인이,

"얘, 그만하고 이제는 어사 출도나 하여라."

"응, 그게 좋다. 어사출도 해라."

기생들 중에 몇 사람의 반대가 있었으나 마침내 중간을 약 하고 어사 출도 막이 나온다.

'금준 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天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 佳肴)는 만인고(萬人膏)라'가 지나고 광대는 고개를 번쩍 들 며 일단 소리를 높여, '쿵쿵쿵쿵, 삼문을 열어라. 암행어사 출도야─'하고 길게 소리를 뽑을 때에 대문으로부터 어떤 사 람이 뛰어 들어오면서 '암행어사 출도야'를 연호(連呼)하고 연석에 올라선다. 어느 개천에 빠졌는지 옷에서는 흙물이 흐르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갈랐던 머리카락이 되 는 대로 이마를 가렸고, 손에는 다 떨어진 흙 묻은 미투리 짝을 들었다. 일동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이 괴물을 주시하 였다.

"오냐, 이놈, 네가 운봉(雲峰)이냐?"

하고 곁에 섰는 노인의 코를 잡아 흔들며,

"네가 운봉이지! 나는 이도령이다. 암행어사다."

하더니 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함사과는 위의를 갖추어,

"이놈, 어떤 미친 놈이냐. 이리 오너라. 이놈 끌어 내려라."

하고 분김에 벌벌 떤다.

괴물은 '히히'하고 떤다.

"오냐, 네가 남원부사(南原府使)로구나, 나는 누군고 하니 사또 자제(使道子弟) 이도령이야...... 하하하."

하고 흙 묻은 미투리로 함사과의 뺨을 때린다.

"아이쿠, 이놈 잡아내어라."

하는 소리에 일동이 달려들어 그 괴물을 붙들고, 망건 쓴 하인들이 뛰어 올라온다. 그러나 그 괴물은 어떻게나 힘이 센지 손과 발과 흙 묻은 미투리로 되는 대로 둘러치더니 마 침내 여러 하인들에게 붙들려 꽁꽁 결박을 지었다. 일동의 옷과 뺨에는 온통 흙이 묻고, 기생들은 벽에 착 달라붙어서 발발 ㄸㄹ기만 하다가 그 괴물이 결박된 뒤에야,

"아이고마."

하고 한숨을 내어 쉰다. 일동은 흙 묻은 것을 툭툭 털면서 결박진 괴물을 노려본다.

괴물은 결박이 되어 마당으로 끌려 내려가면서,

"하하,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괘심한 놈들. 내가 암행 어사인데, 이놈들. 모조리 모가지를 자를 놈들!"

하고 한참 호령을 하다가 ㄲ?ㄹ깔 웃고 나서는 갑자기 태 도가 변하여,

"여보게 함사과, 내가 자네한테 좀 할 말이 있어서 왔네."

"이놈 가만 있거라."

하고 하인이 손뼉으로 괴물의 뺨을 때린다.

"이놈, 내가 누군데. 나는 김참서이다. 내가 아까 죽었는데 함사과 너를 잡으러 왔다.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김참서인 데 자네를 두고 혼자 갈 수가 있나, 자 염라대왕한테로 같 이 가세."

함사과는 쭈볏쭈볏 하늘로 솟는 듯하였다.

"어찌해? 무엇이 어째?

"하하, 자 어서 갓 쓰고 나오게. 지금 대문 밖에 사자가 와 서 기다려."

하고 고개를 돌려 대문을 향하며,

"여보 사자들, 함사과 여기 있소. 옳지 저기 저 뚱뚱한 것 이 함사과요, 내 좋은 친구지."

하인들은 괴물을 대문 밖으로 끌고 나아갔다. 함사과의 얼 굴은 회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 괴물은 성재의 집에서 뛰어나온 전 경이었다.